작업과 河

by hari

분출을 하다가 한 번쯤은 정리해야 될 것 같다는 기분에 책을 들었다. 요즘에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마릴린 뒤마에 관심을 쏟고 있다. 베이컨은 이전부터 좋아했지만 이미지와 그것에 대한 회의가 오면서 더더욱 그를 찾게 되었다. 안정제나 위로제라기 보다는 무질서의 질서를 확립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 것 같기에 그를 살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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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을 인터뷰한 책 중의 한 구절이다. 저 속에 있는 단어배열을 잘 한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말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내가 현재 실현중인 삶이기도 하다.

'깊은 절망과 비관주의 그리고 유머감각으로 삶을 활기있게 만들지요.' 라는 이 문장을 '나'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다르다. 내 현재의 삶은 '깊은 절망과 비관주의가 될 뻔한 생각들을 유머감각을 통하여 활기있게 만들지요.' 라는 문장과 더 잘 어울린다. 이전의 나는 종종 깊은 절망에 빠졌고 비관적이었다. 투명한 희망을 잡고 있기는 하여도 비관적이라는 것을 어떠한 것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는 어떠한 것을 직시하지 못하는 나약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 둘 다 있다. '긍정적인 것이 나약한 것이라고?' 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긍정이라는 것은 결과라는 것과 연관돼 보인다. '결과를 긍정한다, 미래를 긍정한다.' 그것을 지칭하는 것 같다(모든 긍정이 다 그렇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긍정적인 사람은 오히려 현재의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약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난 꼭 될 것이다. 꼭 잘 될 것이다.'라는 언어를 내세우는 사람들 말이다.

부정이라는 것 또한 미래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난 할 수 없어. 잘 안 될 것 같다.'라는 미래를 바라본다.

이와같이 미래라는 것을 내다보며 그것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행위들은 나약하게 느껴진다(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의 나'는 나약함과 관련되어 있었고 어떠한 것을 기록하고 어떠한 것을 희망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 사건이나 감정을 '직시'하고자 하고 있다. 그것은 강함이 아니다. 현실의 수치스러움과 더러움을 직시하고자 하는 뻔뻔한 행위일 뿐이다. 그 행위를 통하여 절망스러운 사건조차 유머러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행위는 나를 깊은 우울로 빠지게 하지 않으며 그저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는 블랙유머와 관련되어 있다. 명랑하고 밝은 유머가 아닌 사람의 수치스러움과 비열함을 콕 찝어 그것을 희롱하는 듯한 유머이다. 아주 날카롭게 현실을 바라보며 회피하지 않고 가식떨지 않으며 마치 건방스러운 유머이다.

이것은 나 혼자 하는 행위는 아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과 같이 고안?해낸 행위인데 그 아이 또한 과거에는 나와 함께 우울과 절망 속에서 있었다. 우리의 삶에는 너무나 큰 목적이 있었기에 그 목적을 잃고싶지 않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친구는 전화를 했고 나에게 물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죽고 싶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당연히 물에 빠져 죽겠다고 말하였다. 내 필명 중 '하'는 물 하의 河였고 나는 물의 날에 태어났으며 탄생석은 아쿠아마린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색은 블루였다. 나는 나 자신이 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죽음 또한 물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그 아이는 너무 당연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였고 그 아이는 불에 타서 죽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반대였다. 하지만 물과 불의 조합과 같이 서로 맞은 편에 있는 듯 하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火水클럽을 만들었다.

우리는 종종 블랙 유머를 즐겼는데, 주로 하는 농담으로는 성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상대를 만나면 처음에는 우리하 자발적으로 우울해 했지만 그들에게서 빠져나왔을 때 우리는 더욱 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치 우리가 그들의 기운을 다 잡어먹은 듯 시들어져 있었다. 그것을 장난식으로 팜므파탈적인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죽음이란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항상 죽음의 근처로 향하고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즐겼던 것 같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죽고싶다는 말을 하였을 때에 다른 한 명은 말리지 않고 '같이 죽자.'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것이 우리만의 위로라는 방식이었다.

이것들 말고 아주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우리들만의 비밀이다. 발설해 버리면 안 될 만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가끔 나 자신이 절망스럽거나 수치스러울 때 화수클럽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난다. 아주 비열한 웃음 말이다.


화수클럽이 있기 전에는 주로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를 그리곤 하였다. 아, 그 전에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이미지를 그리곤 하였다. 삽화같은 그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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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작년 12월달에 그렸던 드로잉인데 한 가지는 예속적인 관계에 대하여, 다른 한 가지는 파랑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증에 관하여 그린 것이다. 섬세하고 말끔한 선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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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그렸던 그림들인데 나는 그림의 소재 혹은 이미지 혹은 그림체 자체를 몇 주에 한 번씩은 꼭 바꾸었다. 비슷한 듯 다른 선들과 면들이 보일 것이다. 연작하였던 작품끼리는 비슷하지만말이다. 하지만 파란색이라는 색감은 포기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것에 지겨웠다. 또한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가 너무나 지겨웠다. 예쁘게 그리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리다 보니 예쁘게 되었다는 것이 더 잘 맞았다. 왜냐하면 그림을 그릴 때 예쁘게 그린다는 것에 초점에 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 상태 혹은 그 날의 사건에 더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화수클럽이라는 걸 친구와 만든 뒤로 그림이 바뀌었다. 일단 소재가 바뀌었는데 그것은 '팜므파탈'이었다.가만히 있는 누군가를 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해치려 하는 타인, 혹은 나를 무시하는 타인에게 알 수 없는 보복을 주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혹은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닌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시들어 보이거나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강력한 숨겨져 있는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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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을 자세히 보면 눈 한 쪽이 들어가 있다. 어떠한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려 넣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눈의 초점에 있다. 초점이 정확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눈은 삼백안이다. 관상적으로 안 좋다고 하긴 하지만 나는 관상을 따르지 않는다. 좋건 나쁘건 저 눈에는 비열하지만 직설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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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누군가를 끌어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 그렸던 그림이다. 나는 그가 고통스럽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내 에너지로 인하여 그가 고통을 받았다는 생각에 잠시 나 또한 고통에 빠졌었다. 굉장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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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위의 이미지와 겹치는 감정이다. 하지만 슬픔 보다는 관능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슬픔의 이전 감정에는 관능의 욕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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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화상이다. 나는 내 볼에 있는 점과 내 윗입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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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다. 내가 그 날 생각한 여성의 몸이다. 그 날 나는 수치스러움을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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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모습이다. 그저 보이는 이미지만 표현하였다. 내가 오빠의 눈을 뺐다는 것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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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를 왜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며 넣었던 것이지만 바로 잊어버렸다. 차라리 잊은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강박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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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슬펐다고 생각했을 때의 이미지이다. 이 날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슬펐고 그것을 블랙 유머로 소화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서 투영되어 보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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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의 제목은 '화수 클럽'이다. 스케지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우연적인 힘이 작용하여 우리를 표현하기를 바라며 스케치를 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아끼는 작업물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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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 이다. 원래는 버건디색의 화장을 하지만 오늘 느껴지는 대로 화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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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상의 여성과 가깝다. 완연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강한 이미지가 너무 크다. 나는 연약해 보이고 비틀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퇴폐적인 여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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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색 담배꽁초 사이에 핑크색 담배꽁초가 있다. 일부러 가운데에 꽂았다. 섹슈얼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담배꽁초 같다.


나는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여성을 좋아하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닌 걸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가진 것이지 그것을 사회적으로 발산하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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