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이모의 삶을 다시 사는 느낌일 때가 종종 있다.
이모는 동양화과를 나오셨다.
나는 어렸을 때 이모집을 놀러가서 ‘왜 이모는 멋있는 서양화를 전공하지 않고 동양화를 했을까?’ 라며 생각했다. 이모의 안방에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예고에 갔다.
담임선생님께서 추천하셨고 왠지 모르게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넣었더니 합격해버렸다. 나는 디자인과에 갔다.
디자인도 재미있었다. 나는 여전히 입시를 하면서도 파란색을 좋아했다. 특히 아쿠아마린 색깔을 매우 좋아해서 그림에도 참 많이넣은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동양화를 전공하는 친구 과실에 놀러갔는데, 그곳의 먹 냄새와 장미에 반해서 나는 전과를 해버렸다. 이모는 반대했다. 하지만 고집이 센 나는 모든 재료를 다 사버렸다.
나는 여대에 갔다. 시험을 보기 전날 서울역에서 이모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는 예전에 여대에 가고싶었는데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여대에 갈 마음이 없었다. 나는 남녀공학에 가고싶었지만, 정시 가군에서 동양화과 중에 제일 높은 학교가 여대였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지웠했고
합격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가 한계에 부딪혔다.
학교에서 그리는 그림이 싫었다.
무엇을 위하여, 어떠한 관습에 따르는 게 싫었고, 학점을 너무 많이 들었기도 했고,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성적 강박이 점점 더 심해져서 나는 휴학을 했다.
글이 좋았다. 시를 읽는 게 좋았고 책을 읽는 게 좋아서 나는 처음으로 그림을 그만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글 관련된 직업을 얻고 싶었고, 휴학하는 내내 글만 썼던 것 같다. 매일 북카페에 가서 하루종일 글만 썼다.
그러다가 한 갤러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찾은 건 아니었다. 그쪽에서 먼저 제의를 했고, 나는 전시 기획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좋아서 처음의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술 작가를 할 거야.”
신기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언제든 미술을 떠나도 언제든 그가 나를 잡으리란 걸 알았다. 그래서 괜히 시간낭비 말고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게 내 운명임을 받아들였다.
졸업을 했다.
나는 몇 년 째 프리랜서로 생활중이다.
누워 있는데 이모가 생각이 났다.
그림으로 둘러쌓인 원룸, 꽤 행복하다.
곧 작업실을 이사할 예정이라 그림이 집에 많다.
이모도 이랬다. 할머니댁 쪽방에서 지내면서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에서 적어도 삼십대까지는 그림을 그리다 붓을 꺾었다.
비혼주의자였던 이모는 결국 서른 넷에 결혼을 했다.
나는 안다. 다시 이모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내가 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작가를 계속 할 것이다.
이모가 젊을 때 힘든 기간을 보냈던 것 만큼
나는 엄청 힘들기보다는 막막함이 가끔씩 있는 그런 기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난 감사하고 종종 행복하고 많이 평화롭다. 주저 앉기도 하지만 그래도 항상 잘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어떤 다짐도 없다.
그냥 주눅들지 말고 내 마음대로 알아서 잘 살고 싶다.
그리고 원룸에 누워서 잠을 자기 전에 그림에 둘러쌓인 나는 단지 이모가 생각이 났고, 이런 불확실한 삶고 나름 의미가 있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나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