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을 느끼기

by hari

요즘엔 살아있는 느낌이다.


내가 항상 하는 질문은 ‘나에게 남겨진 게 뭘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살아있음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예전엔 안정을 추구하면서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여겨서 불확실함만을 택했다. 모든 것들은 성공적이었기에 살면서 모든 일에 후회 없고 감사하다.


문득 혼자 작업을 하거나 누군가와 작업을 함께 하면 내가 잡지 못할 행복이라는 것이 내 옆에 기대서 “행복하지?” 하며 속삭이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응 행복해.” 그러고 끝이다. 잡을 순 없고, 그냥 행복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 내 목표는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를 하면 행복감은 같이 오는 것 같다. 행복? 내가 말로 표현 못하는 기쁨같은 것이다. 눈을 뜨고 현재를 바라보는 행위. 그게 행복인 것 같아서 무엇으로도 살 수는 없지만 행할 순 있다.


작업을 한다는 행위 자체게 집착해서 오로지 그것만이 내 행복이고 살아있음이다, 하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면 그냥 그 순간에 오롯이 존재할 때 작업이 잘 되고 그것에 맞추어 온 우주가 내 행복을 축복해주는 느낌인 것 같다. 그게 바로 살아있음이다.


글로 쓰든, 프로젝트를 하든, 영상을 만들든, 그림을 그리든, 누군가를 가르치든, 전시 기획을 하든,


모든 창조적인 행위 속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그 의미는 ‘창조’라는 모든 것 속에 숨어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변화해 나가는 것들을 붙잡지도, 다가오는 것들을 억지로 거절하지도 않은 채로 삼삼하게 바라만 보는 것들. 수동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그냥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춤을 추는 것.


어렸을 때 올백을 많이 하고 다녀서, 내 두상도 동그랗고 해서 그림 그리는 애보단 무용하는 애처럼 본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춤을 추지 못해서 그 행위를 보는 순간 내가 무용수가 된 듯이 행복감에 빠지는 것 같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습이 되어서, 전생에 했던 행위 자체를 이 세상에 다시 가져온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들과 상관없이 그냥 언제든 창작하며 사는 사람이었나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자랄 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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