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로의 삶

by h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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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느끼면 다음과 같다.

문득 가슴속 확장되는 느낌이 나면서,

이게 진짜 맞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등학생 때 입학사정관제를 위하여 자기소개서를 썼다.

담임 선생님은 그 글을 보시더니, “너 정말 글을 못 쓴다.”하셨다.

내가 그 말을 비판 없이 믿었더라면 나는 그냥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예술총회 미술부문 칼럼니스트 회장상을 받았다.


나는 누군가를 신뢰하지만(그것만큼 특별한 선물이 없기에) 그 사람의 말을 백 퍼센트 믿진 않는다. 직접 겪어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행동을 믿는다.

그것은 직감이 될 수도 있고 행동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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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예고에 다녔고, 디자인과였다. 디자인 입시는 물론 재미있었다. 한 가지 파는 걸 좋아해서 변태같이 꼼꼼히 정확히 그렸는데 그게 내 적성과 잘 맞았다. 그러다가 한국화과 친구와 친해졌고, 문득 한국화실에 놀러 갔다. 먹냄새가 너무 좋았다. 몽롱한 한국화실의 분위기가 좋았고, 그곳에 장미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걸 해야 된다, 하는 느낌이 너무 커서, 부모님께 전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철없는 아이의 말처럼 무시하셨다. 실은 부모님은 나의 선택을 매 순간 존중해 주셨어서 한 번도 무언갈 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었는데, 순수회화만큼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중에 무얼 할 것이냐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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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이모는 한국화가이셨다. 이모는 서양화를 배웠다가 한국화로 전과하셨는데, 우리 집안에는 예술가는커녕 무언가에 대하여 창조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집안인데, 오묘하게도 이모는 그림을 그리셨다. 할머니 밭에 가서 그림 그리겠다면서 매일 조르고 졸라서 대학원까지 미대를 나오셨다. 그런 이모가 내가 한국화를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말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날 엄마카드로 한국화 재료를 싹 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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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 무언가 잘못되지도 않았는데 허구한 날 울기만 했고, 엄청나게 예민해서 고등학생 때 공부할 때 엄마한테 설거지도 못 하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감각이 곤두서 있어서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 강도가 굉장히 셌다. 그걸 초민감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그 감각들을 명상이나 운동 등으로 다스릴 수 있어서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사람 됐다.

이모랑 우스갯소리로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내 옛날이야기를 했었다. 이모는 매일 우는 내가 너무 얄미워서 웃으면서 나를 꼬집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정말 편안한 순간이 있었는데, 나에게 손수건 하나만 주면 된다고 했다. 가끔씩 우리 엄마가 바쁘셔서 나를 이모한테 맡기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한테 예쁜 손수건 한 장만 주면 그걸 접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면서 놀았는데 그 행동을 두 시간 정도 동안 반복하면서 집중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손수건만 있으면 나는 쉬운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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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 사진을 발견했다. 통통한 여자애가 책상에서 거의 고개를 너무 많이 숙여서 책상에 파고 들 기세로 무언갈 하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나는 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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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군가에게 억지로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해서, 혹은 고객의 요구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시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 자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내가 왜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여태껏 밥 먹듯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것이 좋아하는지도 모르게 내 생활이었다. 학교 쉬는 시간에도 그림을 그리고, 내 보물 일호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드로잉북이었다. 정성스럽게 그려서 매년 세네 권씩 간직하곤 했는데, 그때 학교에서 양아치 여자애가 나에게 와서 본인이 그걸 찢어버리면 어쩔 거냐고 비아냥 거리면서 말했을 때, 조용히 지내던 나는 그 말에 그 아이를 가만히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이 싫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그냥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그림을 좋아했다.

대학교에 입학했다. 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지만 실은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좋아해서 공부하거나 그림 그리는 데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다가 스스로 강박도 생기고, 나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은 정말로 감사하게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수님들이라서 항상 친하게 지내곤 했는데, 나와 친하지 않은, 종종 잘 맞지 않는 교수님들께서 “해야만 한다.”라는 아카데믹한 발언들 덕에 내 강박은 더 심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 지경까지 갔다.


무얼 그려도 내가 부족할 것만 같았다. 미술사학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철학을 깊게 공부하니 그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왜냐하면 아는 게 너무 많아지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의 판단과 비판이 무서웠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예술 칼럼을 수년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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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습관적으로 휴학을 하고 쉬는 날에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그리는 드로잉이었는데 그날, 너무 잘 그려져서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집중하면서 그림만 그렸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난 그게 너무나 행복했다. 그 순간 내 단짝친구가 왔다. 그 아이도 그려줬다. 그 시간이 영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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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반년도 안 되어서 나는 하루에 적어도 네 장씩 드로잉을 했다.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관두려고 했던 사람 치고는 참 열심히 그렸다. 그게 열심히 하는 건지도 모르게 열심히 했다.

그걸 세네 달씩 습관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때 아는 오빠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오빠가 나에게 전시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내가 무슨 전시인가? 싶어서 그냥 농담으로 하는 것이겠지 하고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그냥 평상시처럼 그림만 주야장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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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었다. 나는 전시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아는 언니와 2인 전이었는데, 그 언니 사정으로 내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고, 그것을 희망하지도 않았고, 확언도 안 했고, 바라지도 않았고, 내 목표에도 없었던 기이한 일이었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찰나의 순간 ‘화가’라는 장래희망을 ‘희망’ 한 것 빼고는 작가라는 직업이 내 꿈이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일러스트레이터나 그림을 통하여 상업적인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 등이 내 꿈이었다.

그런데 그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하지만 무수히 알고 있었던) 꿈이라는 것이 그냥 내 앞에 선물처럼 놓여 있어서, 나는 그것을 주섬주섬 받으면서 “이게 내 것이야?”하고 삶에게 물으니 삶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강하게 확신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너무 당연하게 나에게 주고 간 선물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확신할 필요도 없었고, 기대할 필요도 없었고, 희망에 찰 필요도 없었고, 나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나의 것이 되었다. 그것이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어차피 거부하게 되면 또다시 길을 돌고 돌아서 그 길이 내 앞에 떡하니 서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곤 나에게 말하겠지, “이래도 날 밟고 지나가지 않을 거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슬픈 날이건 힘든 날이건 행복한 날이건 기쁜 날이건 마음이 충만한 날이건 그냥 미술작가라는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