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차 번호판을 보면서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그 글자와 숫자들을 조합해서 작업할 예정이다.
폭풍처럼 지나가는 것들이 있었다.
요즘은 폭풍처럼 무언가들이 항상 지나가는데,
언제나 그랬듯 내 삶은 안정적이면서도 폭풍처럼 계속해서 지나간다.
지나가는 게 너무 싫고 힘들어서 모든 것들을 붙잡아 두려고 했을 시기에는 내가 고여있었다.
그것들을 다 놓아버렸을 때 자유라는 걸 느꼈다.
자유는 모순된 지점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 속에 큰 자유가 있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통제권이 스스로에게 자율적으로 부여된다.
그 주체적인 삶을 살 때 스스로의 근육들은 점점 늘어간다. 계속해서 삶에게 폭풍우처럼 뺨을 맞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튼튼해지고 강력해진 근육들이 보이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리고 나중에는 깨닫는다. 어떤 상황 속에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를 말이다. 그런 내적 가치 속에서 우리가 그릴 수 있는 도화지들은 커지고,
작은 세계 안에서 갇혀있던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집 가는 버스 안에서 고속버스터미널을 스쳐지나가면서 인도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형용할 수 있는 현존을 느꼈다.
어떠한 것이 나를 떠나길 지 혹은 어떠한 것이 내 곁에 있을 지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정말 나의 것이라면 내 곁에 있을 사물들 사람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판단은 스스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문득 요즘에는 다시 감사일기를 쓴다.
어떠한 상황이나 사람이 나에게 닥쳤을 때 그것들이 싫으면 너무 싫은데 문득 그런 상황 속에서도 축복을 보낸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면서도 좋다.
이타적이지 않은 나에게 가장 큰 이타성을 부여하는 문장같아서 좋다. 그래서 마음껏 축복하고 감사한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만족감이 아니라 세상의 만족을 얻은다.
순간을 움켜잡을 수가 없어서 급하게 흘려지내보내고 싶지 않아서 조급한 움직임들이 보이지만 결국 남아있는 건 순간뿐이라는 걸 알기에 그것들을 음미하면서 끝끝내 순간을 산다. 모든 생각들을 놓아버리고 내 숨을 느끼면 세상이 날 지켜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런 안도감에, 가끔씩 세계가 날 혼내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냥 차분하게 ‘스스로 해내’ 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아서 단지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들도 정말 많고 고마운 것들도 정말 많다는 나 자신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
문득 몇 년 전의 아이가 생각나는데 그 아이가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죄를 짓지도 않은 우리라는 관계성이 생각이 났다.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서로가 미안할 것도 없고 용서할 것도 없다. 그냥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서로가 인정하지 못해서 상처를 준 것 뿐이었는데, 단지 다독여주기만 하면 될 것들을 참 오랜 시간동안 미안해 했다. 그래서 그냥 그 아이를 축복해주기로 했다.
무언가를 목적 삼아서 하지 않는 행위는 아름답다.
그것이 계산적이든 직관적이든 어떠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고, 모든 부정성 속에서는 사실 스스로 속이고 있을 지라도 누군가에게 항상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한 인물이 소년과 소녀가 되어 세상에다가 나지막하게, 사랑받고 싶다, 하는 것 만큼 기이하고 어긋나는 상황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들 안에 있는 냉철한 어린아이가 있다는 생각 속에 그 아이가 가여운 것 보다는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약한 모습을 타인을 통하여 관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사랑할 수 있고 그냥 그들의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놔둘 수 있는 것 같다. 결국엔 사랑밖에 남는 게 없으니
나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축복할 일 밖에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