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경이롭게도 지각, 결석, 조퇴를 한 기억이 두 손가락 안에 꼽힌다. 물론 유치원 때부터 그랬는데, 정말 죽도록 아파도 참고선 수업을 들었다. 왜냐하면 죽도록 아파도 죽지 않을 걸 아니까, 수업 중 빠졌을 때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더 귀찮아서 그냥 들었던 것 같다. 어차피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까지 팽팽하게 살았나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난 그렇다.
오늘은 급하게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발바닥 침이 그렇게 아프다던데, 의사쌤이 많이 아플 거라면서 참으라고 하면서 침을 놓아주셨는데 정말 아팠다. 하지만 긴장도 안 하고 아파하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으니 의사쌤이 정말 잘 참는다고 칭찬해 주셨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육체적 고통을 참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지다 보니 가끔 다치고 병원에 가면 왜 지금껏 참았냐고 혼날 때가 있다. 그래서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기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냥 아프면 참고, 또 참고, 그랬던 것 같다. 정신적인 것 보다 육체적인 것들이 아프면 그렇게 큰 타격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어렸을 때부터 너무 민감해서 아주 작은 내적 상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웃기다.
다 크고 나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인내가 길러지긴 했는데 오늘도 죽도록 아팠다. 그런데 안 죽을 것 아니까 그냥 아픈 걸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죽어도 나는 이제껏 재밌고 행복하게 살았으니 감사한 일이다.
큰 돌덩이가 내 가슴 정 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그 상태 그대로 내 주변에 맴도는 아이인데, 나는 그것을 다른 타인을 통하여 바라보곤 했다.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모든 걸 놓쳐버렸다. 그 상태로 구년을 보냈다.
그런데 잡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내 곁에 있다. 처음엔 놓친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곁에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완벽히 잡을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 완벽히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니 잡을 이유조차 없고 잡고싶지도 않고 그냥 그 사람이 존재하는 대로 놔두다가 가끔씩 서로에게 기대고 껴안고 사랑해주는 일 밖에 없다는 생각에 좀 더 편안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지만 여전히 모든 것에 대하여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곁에 있다는 그 느낌이 아늑하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또 다쳐서 집에 돌아온 어눌한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쉬면서 자는 것 밖에 없었는데
문득 내가 잡고 싶은 게 현재의 무엇이 아니라 과거에 받았던 상처에 대한 투쟁같은 거였다. 부재에 대한 기억과 그것들을 바로잡으려는 투쟁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듯 그 아픈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다가 여전히 죽도록 아프구나 하면서 생각하다가 그냥 그것들에 대하여 놓아주고 생긴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난 것들은 그대로 존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놓아주는 것 뿐이다. 정말로 죽도록 아파도 죽진 않는다.
그리고 내일은 내 삶에 들어올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내가 그토록 잡고 싶었지만 항상 떠나있었던 사람의 새로운 구멍을 채워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일주일 전 부터 무얼 선물해갈까 한껏 기대하면서 잔뜩 신나 있었는데 결국 발이 다쳐서 아무것도 사진 못했다. 그런 바보같은 내 곁에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는 어린 나의 모습이 있지만 그래도 결국엔 그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내가 누군갈 잡고 싶듯 남도 항상 날 잡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피해가며 누군가가 나를 잡으려 할 때마다 미끄러가듯 가만히 있진 않았다. 사랑받지 못했던 것들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게 자리잡히게 되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수십번 수백번 거절해도 마음껏 사랑하고 있다. 그러다가 스스로를 숨겨도 그것마저 사랑하고 누군가가 거절해도 그 거절조차 사랑한다. 가끔씩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파도 죽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