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광선

by hari

작년 딱 이맘때 쯤 녹색광선에 대하여 작업을 했다.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사람때문에 지칠 때도 정말 많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영향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이유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항상 사람에 대하여 열려있으려고 하는 편인데,

그렇기 위하여 내 작업을 재미있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 미술하는 지인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서로가 서로를 보게 되면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가에 너무나 지쳐있었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었기에 다른 예능계열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작년에 미술하는 누군가에게 평가를 계속 받아서 그것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던 시기에, 곁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 때 당시의 내가 스스로의 진심도 잘 모르겠어서 계속해서 헷갈려 하고 있었다.


나는 누굴 사랑하는가, 혹은 누굴 사랑하지 않는가, 혹은 욕망하는가, 이런 헷갈리는 것들 때문에 항상 내면에게 물어봐도 되돌아오는 답은 정말 애매모호한 목소리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녹색광선이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영화 녹색광선에서 쥘 베른은 녹색광선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걸 원했다. 진심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사실 많이 지쳐있었던 시기라서 마음도 몸도 아팠는데, 내가 가장 아플 때 새벽에 달려온 사람이 있었다. 그 때 당시의 내 남자친구인데, 그 때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이미 헤어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고마운 사람으로 남겨져 있는데,

오빠 덕분에 내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이 되기도 했다.


나는 녹색광선의 반대편에 있는 욕망의 상대 또한 있다고 생각했는데, 욕망의 상대는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무언가, 혹은 내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변화하는지 일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욕망의 상태가 녹색광선이라는 진심으로 변화해서 다시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감사와 에너지와 그 사람의 오라를 담아내고 있다.


욕망의 사랑과 아토포스적인 사랑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데, 욕망의 사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이 100%는 아니고, 어느 정도의 진심 또한 있다.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느낌과 더불어 욕망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아토포스적인 사랑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떠나리라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설사 그럴지라도 자유롭게 떠나보낼 수 있는 상태이다. 놀랍고도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시기마다 지속적으로 있었는데,

최근에 내 사람 중에서 정말 사랑스럽고 그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하여 녹색광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축복을 담아서 작업하고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여전히 욕망의 사랑의 형태 또한 있다. 이것은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럼으로써 순수한 사랑에게 더욱 감사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하튼 나는 삶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또한 사랑하고, 욕망이든 순수이든 모든 것에 감사하고 축복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나는 녹색광선이 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번갈아오면서 지나가는 인연들에게 감사하고,

존재함에 감사해지는 것 같다.

언제나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음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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