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by hari

나는 자아가 없을 때가 제일 좋다.

내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고, 무엇도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스스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도 중요하지 않고(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개념은 아니다) 완전히 많은 것들을 놓아버려서 무척이나 자유로운 상태일 때

아무것도 잡고싶지 않고 그 순간을 그대로 만끽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고마운 하루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챙김도 받고 따뜻함도 받았다. 사실 걸리적 거리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것들을 내려놓고 삶의 좋은 점을 바라보았을 때 생각보다 받고 있는 것과 지니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인연을 사랑한다. 유년기가 성인때까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언제나 참이라고 생각하는데,

신기하게도 어렸을 때 인연에 관한 상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크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연을 언제나 크게 사랑한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 고착되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옆에 있진 않는 것 같다. 그냥 바람같이 누군가의 옆에 붙어서 사랑을 주다가 스스로의 집으로 갔다가, 그걸 반복하면서 자유로운 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이 한 시절에 나를 거쳤다가 떠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슬펐다가 이제는 그렇게 많이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서로가 필요해서 만난 인연이었는데, 서로의 필요가 다 되면 끝이나는 게 또 인연이라고 생각한다(이해관계를 뜻하는 건 아님). 그래서 최선을 다해 그 사람에게 나의 것을 주었으면 그리 후회는 없다. 억지로 붙어있으려 하면 관계가 체하듯, 떠나 보내야할 때를 알고 보내주어야 한다는 걸 최근에 느끼고 있다.


나의 생활 반경 속에서,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지만 그 자유를 얻으려면 스스로의 삶의 통제권을 알아야 한다. 억지로 통제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파도에 쓸려 중심을 잃는다.


그 행위가 반복과 습관이다. 여러가지 일들을 반복해서 습관으로 잡아두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내적 재산이 된다. 그 재산은 아주 미미하게 매일 성장하며, 그 미미한 성장을 수년간 지속시킬 때야말로 정말 견고한 틀이 된다.


나는 그런 반복과 습관을 좋아하고, 거기 안에 있는 새로움도 좋아한다. 그리고 정말 완전히 새로운 상황도 좋아한다.


변화, 새로운, 안정, 반복, 꾸준함, 자유,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 삶의 맥락 속에서,

저번에 갑자기 동현이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 날 스케줄이 빽빽해서 피곤했는데 왠지 동현이 보러 가야할 것 같다는 큰 직감이 들어서 태민이랑 같이 동현이를 보러 갔다.


동현이는 정말 많이 바뀌었고 나도 정말 바뀌었지만 우리의 본질적인 것들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그냥 사랑한다.


오랜만에 웃긴 애들을 만나서 예상치 못한 삶의 전개 속에서 나는 또 종이인형이 되었다. 그냥 많은 걸 놓아버리고 흐름에 맡기고 상황에 맡기니 신이 조종하는 종이인형이 되었는데 그 상황이 너무 즐겁고 재밌고 참 행복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이 망나니가 되고 싶진 않아서 술은 안 마셨는데, 그랬기에 변화와 안정과 자유가 함께 있는 느낌이라 견고하고 탄탄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겠는 삶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놓아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정말 위태로워 보이지만 무엇보다 견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될지라도 나는 그냥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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