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걍 나다 특별할 것도 없이

by hari

난 결국 변화를 원했지만 돌아오는 건 고향의 것들이었다.


난 사실 요즘 울 일이 없었다. 안정적이고 내가 하고싶은 것 다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는 자존감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행복했는데 그 행복은 사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갑자기 내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좋은 징조이기도 하는게 산산조각나는 시기는 언제나 오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나는 운동하는 내가 좋긴 하다. 일 하는 나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난 그림그리는 내가 제일 좋다. 그걸 잃었을 때 제일 슬프다.

생활이 운동이랑 일로 뒤범벅 당하고 있는 찰나에 나는 그냥 다 바꾸고 싶었고 어디에든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날들이었고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고 그냥 나 스스로 존재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 대하여 호구조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나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를 설명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난데 내가 왜 나를 설명하고 내가 하는 일을 왜 설명하고 내 직업을 왜 설명하고 내 존재를 왜 설명하고 나라는 사람이 왜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거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했고 그게 귀찮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했다. 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 대하여 특별하게 봐주면 감사하지만 지나치게 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거나 나를 완벽하게? 보면 부담스럽고 난 사실 그냥 별 것 아닌 걍 인간인데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거의 맨날 친구를 만나긴 했다. 그래도 홀로 생각도 많이 하고 나에 대하여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도 했는데

어제 이상할 정도로 혼자서 충격받은 일을 겪고 나서 정신이 약간 몽롱해진 상태에서 정신 차리려고 일 하면서도 정신 다 잡고 생활한 하루였는데 그래도 감사한 게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재료 사러 성심필방을 갔는데, 이상하게도 석채들에게서 빛이 나는 것 처럼 그것들을 바라보는데도 그냥 행복했다.

내가 요즘 그림을 많이 그리지 않아도 난 정말 너무 말도 안 되게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정말 말이 안 됐다. 그냥 그림이 날 지켜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흔들려도 내 곁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꺾긴다. 처음 꺾였을 때에는 너무 아파서 몇날 며칠, 아니 사실 수년간 아팠는데, 그러다가 아픈 마음을 다 버리고 나서 건강한 정신으로 생활했는데 그래도 삶은 날 꺾어놓았다.

그 건강한 정신 속에서 나를 꺾어버리니 나는 무참히 꺾여버렸고, 또 다시 부러졌을 때에도 똑같이 아팠지만 일주일 안에 회복이 되곤 했지만 그 충격들은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기도 했는데,

삶은 언제나 나를 무참히 꺾어 놓는다. 정말 수도 없이 반복되는 고난들인데,

이제는 그것들이 오면 그냥 인사한다. 또 왔냐.

고통을 느끼는 강도가 줄어들지만 여전히 아프다. 때로는 정신없이 아파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냥 가만히 삶을 관조한다.

사실 고통을 안 느끼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 않아서(오히려 외양간 잃은 망아지같이 컸음) 모든 것들을 혼자서 감당하는 시간을 매번 겪었는데,

그러다보면 숲속에서 길을 찾는 소년처럼 나는 언제나 내 길과 방향을 알아서 찾아나갔다. 그 과정속에서 재미있는 상황들도 많았고,

많은 것들이 깊고 단순해진다.

복잡해서 이로울 것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걸 선호하지도 않는다.

정말 짧은 단어나 문장에도 진심을 담는다. 왜냐하면 삶이 그렇게 만든다.

아픔을 많이 겪을 수록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넓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찾아서 고통을 받고 싶거나 고통을 옹호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나칠 때 삶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걸러진다.

진짜들만 내 삶에 남겨지고 가짜들은 다 없어져버린다.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뼈가 깎이는 고통을 겪지만 그만큼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진짜 ‘살아있는 것 처럼’ 살게 된다. 죽어 있는 껍데기들은 모조리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다가 펑펑 울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그림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고 난 그냥 작업실에서 처박혀서 그림만 그리는 게 내 꿈이었다는 것이 다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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