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지내는 요즘에 나는 여러가지를 느끼고 깨닫고 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분은 팔이 잘려나간? 분이었는데, 전기 기계공이었나? 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팔을 잘라야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상태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 상태에서 본인이 가장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비우고 그림을 배워서 그림그리는 거라고 했다.
잡 생각이 들 때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꽤나 유명한 전업 작가가 되셨다.
그것이 나한테 엄청 좋은 영향으로 자리잡혀서, 나는 그냥 생각 없이 한다. 기대하지도 않고 결과를 일부러 생각하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면 과정만이 남는데, 신기하게도 과정 속에 결과가 있다.
어느 날에는 공모전을 내다가 이미 내가 이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에는 항상 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엄청 느끼며 작업한다. 기대도 없고 판단도 없이 나 자신이 된다.
사람간의 것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변치 않는 영향력들이 있고, 그건 운명이라는
가혹한 언어로 바꾸려는 고지식한 게 아니라,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맞는 결인 셈이다. 그래서 그 잘못을 고스란히 개인에게 맡기는 건 너무나도 비참한 것이고, 그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다. 단순히 세상이 그런 것 뿐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
나에게 조언을 해 준 사람의 말 중 기억에 남는 건,
일하다가 실수했을 때 그것 가지고 이유를 캐물으며 너무 본인 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어나는 건 일어나는 것 뿐이고, 그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는 있지만 자책의 형태로 그 잘못과 이유에 대하여 너무 깊게 생각하고 우울해하지 말라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이 전부인 것 처럼 살아가는 유년기에는 우리의 세상은 전부가 부모님의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 키울 때 말도 조심해야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감추고 비밀로 하려고 해도 자녀는 부모의
행동과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그들이 불안정할 때, 그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며 무의식적으로 인지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그들의 비밀을 깨닫는다. 신과같이 모든 걸 알고 온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실수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가증스러울 정도로 미워했던 인간이었다. 어린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걸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자리잡힌 나의 습관들 또한 밉고 바보같은 행동들이 많고, 성인이 되어서도 마치 다섯살의 그 때 당시의 나의 행동이 고스란히 습관처럼 자리잡혀 지울 수 없는 업보같은 것들이 여전히 있고,
그것들을 말끔히 지우고 싶어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지만 결국에는 원위치에 있는 내가 있다.
수년전만해도 그런 고쳐지지 않는 내가 바보같기도 하고, 고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물끄러미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그냥 그런 것 뿐이다. 어느 누구 잘못한 것 없이,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 뿐이다. 상황이나 잘못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정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나의 것을 그냥 그대로 바라보고, 화해하고, 또 비슷한 것들이 온다면 그냥 그대로 지켜보면서 말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내가 택한 카르마이고, 그 속에서 장점과 단점을 극단으로 선택해서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런 특질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작업을 하면 내가 중도를 행하는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깨달음이 있다.
지나가는 구름과같이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나라는 아주 미미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그 일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가.
아니다. 그냥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지닌 채로 지나가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나는 나라는 이름을 지닌 채로 걸어다니는 사람이고, 단순히 자유를 좋아하고 그것을 제일 중시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막무가내이고 제멋대로 보이는 그 질서들을 사랑한다. 그러한 무질서의 상태 자체가 인간적이고 어느 상황이든 삶을 수용할만한 여지가 있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잘못된 길을 갔을 때, 그 길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나에게 있어 가장 최상의 지름길을 세상이 나에게 선물해주었다는 느낌을 얻을 때 나는 어떠한 소속감도 없이 그 선물을 받아들이고 기뻐한다. 삶은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빠보이는 어떠한 사건들은 삶이 우리에게 상처주기 위함이 아니라 더 강인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선물을 포장지없이 우리 얼굴에 던진다. 그걸 받고 상처받을 지 기뻐서 덥석 잡아버릴 지는 개인이라는 작은 인간의 행동에 달려있는 법이다.
그래서 몇 달 전쯤 나를 스쳐지나갔던 한 인연도 생각이 나는데, 이상할 정도로 선한 그 사람의 곁에 있으면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문득 옆에 서서 항상 안아주고만 싶었고, 그럴 때마다 예민한 나는
아팠다.
그런데 몇 달이 흐르고 그 사람 곁에서 똑같이 서 있어도 나는 똑같이 그 사람의 무거운 진동때문에 아팠지만 결국에 그 사람이 해맑게 웃고있는 걸 보고야 말았다. 그도 나와 같이 다섯살짜리 아이였고,
어쩌면 단순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가득한, 부모님에게 프로그래밍 된 한 나약한 아이일 뿐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사실은 별것도 없이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 수밖에 없다. 탓할 것도 없고 무거운 죄도 없다. 사람들은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살며, 누구는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가치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누구는 그러한 획일성에 토를 할 것만 같은 메스꺼움을 느끼며 이상한 본인만의 방식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행복해한다. 완벽한 방식은 없고, 머리를 쥐어짜내며 이해할 필요 또한 없이 그냥 그 상태로 삶을 느낀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그런 요상한 세상 속에서 나는 그저 내가 지닌 것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춤을추며 세상을 느끼고 있다.
거부감이 들기고 하고 두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 또한 흘러가는 구름인 것 처럼,
회화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한 실수의 선 처럼,
그 실수가 오히려 인간적인 순수한 자연스러운 회화의 한 시퀀스로 자리잡힌 것 마냥,
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내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 중 일부로써 받아들이고
완벽하지 않은 그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자코메티가 말했던 완벽한 작품은 없다는 그 언어와도 같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방식이
아닐까?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올까?
준비된 자는 결과도 생각 않고 그냥 삶이 얼굴로 무차별하게 내던진 결과물들을 본인에게 맞는 옷처럼 고쳐 입는다. 그리고 단순히 그게 행복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