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by hari

내가 대답하기 제일 간단하면서 큰 난제인 질문은


왜 창작을 하는가? 이다.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비판적인 사람의 내면을 낯낯히 파악해보았을 때 그 사람조차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엄청 컸다는 걸 알고 누구나 다 여전히 어린아이구나 싶었던 적이 있다.


평가나 외부적인 것들은 어차피 유동적이다. 절대적인 무언가도 없고, 아무리 박학다식한 지식을 자랑하고 굳고 죽어있는 정보를 현학적으로 풀어내며 사는 사람 또한 기저에는 그저 한 인간으로 사랑받고싶다는 너무나 단순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


나는 단지 소명을 위해서 창작하는 것도 있고 현상 유지를 위해 창작하는 것도 있다. 이렇게 단순간 걸 위해서 내가 투쟁할 게 무엇 있을까? 내가 태어난 이상 그저 내 길을 회피 안 하고 똑바로 응시하면 알아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가 을이 되거나 쩔쩔맬 이유가 없단 걸 알았다.

어차피 내 건 내거고,

다 갖는다. 그게 끝이다.

내가 이룰 건 다 이룰 것이고 잃을 건 잃는 것이다. 그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어쩌면 살기 편하다.


최근에 느낀 사실인데,

예전에는 복잡하고 아이처럼 다루어야 하는 한국화의 밑작업을 할 때 너무 귀찮기도 하고 빨리 물감으로 채색하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이 밑작업 또한 너무 재밌다.

물감을 하나하나 만들고 아교를 풀고 밑 채색 작업을 하고 배접을 할 때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작업의

질이 떨어지거나 혹은 다시 해야한다. 그렇기에 완전히 현존하면서 하나하나 질감을 느껴가며 하는 이 작업이 소중하기도 하고 재밌는 것 같다.


나 여전히 사랑하네, 난 순수를 추구하지도 않고 상업적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냥 순수와 물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어떠한 긍정성이나 부정성의 판단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취하고 싶은 것이다.


순수해야 할 영역에는 지극히 온전히 순수해야 한다. 그 때에는 온 마음을 담아 나의

세상을 허세없이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내 재능이나 내가 가진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가를 받고 그에 걸맞는 커다란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순수 회화 작가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이며, 가끔은 나 스스로에 대한 어필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미술작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고상해야 하고 좀 더 순수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정말 똑똑한 것이고, 타이틀에만 집중해서 착하고 순수한 척 하는 것이야말로 그냥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