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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Jun 25. 2024

잘게 잘게 쪼개는 것.



청소년기에는 대학교나 고등학교 전공이 항상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내가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데,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해 오면서 내가 왜 이런 경험도 해야하나 힘든 것도 있었고 실패도 너무 많이 해 봤는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면 잃은 것도 너무나도 많지만 사실 그것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의 비극은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큰 것이 될 수도 있는 상대성을 가졌겠지만 결국에는 나는 언제나 딛고 일어섰고 그것들이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를 떠나갔다.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더이상 내 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지녔을 때에도,

문득 깨달았을 때 결국 그 사람도 사람이고 결국 그 사람이 내 곁에 떠나가더라도 비슷한 경우로 다른 이가 그 사람을 대체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 나는 그냥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껏 나를 할퀴고 갉아 먹어도 된다는 감정적 항복을 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밉지 않고 그냥 안쓰럽고 연민의 마음이 들고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결국 내가 미워서 괴롭힌 게 아니라 본인이 아파서

나에게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지금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어쩔 때에는 잘난척 하고싶기도 하고 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내가 성취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고 가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있는대로 살고

있는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식습관 하나 바뀌니 삶이 바뀌었다.

나는 계산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물 흐르듯이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고 사는 게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실은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었다.

통제라는 것은 억압이랑은 결이 다른 것 같다. 너무 많이 통제하면 지나치게 경직되고, 너무 적게 통제하면 미래에 대하여 들여다 볼 수 없다.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의 특질들을 모아둔 것이 그 중간지점인데, 나는 여자 치고는 남성에너지가 많은 편인 한편, 직감에 대해서는 여성에너지가 월등히 높다.

그런데 이제는 그 둘 사이를 적절히 조화를 찾으면서 왔다갔다 하고싶다. 그게 자유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딱 정해놓고 지킨다는 게 어느 영역에서는 제한과도 같이 느껴져서 대부분 한계 없이 생각하곤 했는데,

누군가가 그 정해놓고 지킨다는 게 어떠한 영역에서 더 소중히 여기고 약속을 지켜준다는 의미라는 말이 인상깊어서 나는 그걸 지키고 있는데 그게 바로 식단과 운동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강박적으로 정확히 지켜서 하는데 사실 그건 강박을 내려놓으니 이렇게 정확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고 정확한 시간에 밥 먹고 정확한 시간에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영양소 골고루 먹으려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2년간의 몸무게 변화가 1키로도 안 되거나 혹은 빠진다.

이건 나의 강박이라기 보다는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나의 믿음과 약속인데, 사실 프리랜서나 미술작가라고 하면 자유롭고 생활 자체도 물 흐르듯이 할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규칙적으로 만들지 못하면 이런 생활을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칙성에서부터 힘이 나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똑같이 밥먹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그림그린다.

그게 힘이다. 외부세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에는 3번차크라를 풀어주려고 하는데, 내가 여전히 하고싶다는 게 너무 많음을 깨닫는다. 그냥 소탈하게 평범한 한 인간으로 조용히 살고싶었지만 내 안에 있는 나의 영혼과도 같은 무언가는 나를 자꾸

밖으로 내보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릇이 넓어야 한다. 실은 행복하기 위해서 무언갈 성취하고 돈을 많이 벌고 무언갈 많이 획득하자는 목표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난 그냥

조용히 살고싶다. 그런데 내가 다 부딪혀보고 도전해야 할 것만 같다. 많은 걸 획득했을 때 그만큼 내가 감내해야 할 것이 많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냥 그 힘이 내 안에 있으리란 걸 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그냥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야생에서 모든 걸 다 수용하고 겪어보고 싶다는 모험심이 충만하다. 왜냐하면 불확실하더라도 그 모험들을 다 해보고 죽고싶다. 그래야 진짜 살아있다고 느낄 것 같긴 하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가 되었건 나는 여전히 다양하게 무언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충만한데,

내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도움 요청하기 이전까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싶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더라도 익숙해지면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싶지 않아서 일단 해 보고,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손을 맡겨야 할 때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넘길 것 같다. 그게 나의 노년의 모습일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늙어서도 젊게 살고 싶고 정말 늙어서도 간지나고 재밌게 살고싶다. 친구가 없다면 동물이랑 친구해서라도 살것 같고 아니면 어린 친구들이랑 같이 철없이 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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