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 종사하다보면 여러가지 문제? 라는 것들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냥 친한 지인이어서 도와줬다가, 나중에도 계속해서 도와주는 상황이 생기면 그냥 내 재능 자체를 무페이로 한 채로 그것을 제대로 확정짓지도 못하고 내 재능을 함부로 무료로 봉사한 적이 있다. 그게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서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정이라는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어서 단호하고 정확하고 명확히 하면 저 사람은 저리 냉정하네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될 수도 있다. 무언갈 명확하고 정확하게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상대의 것과 동시에 자신의 것을 배려하고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우유부단하게 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의 돈과 인적 자원 자체를 배려하지 못하고 함부로 남용해도 된다는 의미로 삶은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것이 상대의 어떠한 상황이든 말이다.
오늘은 정말 신기한 하루였는데, 내가 예전에 시달렸던 그러한 정 문화, 그리고 내가 지속적으로 도와주었던 일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하루였다. 물론 그 일들을 하면서 나 자신의 성장에도 굉장한 발전이 있었지만, 정당하게 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게 상대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을 지라도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말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애매하게 굴지 않는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대하고, 나 자신 또한 타인에게 그렇게 대한다. 그러한 명확함과 분명함 또한 상대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 기다리려고 하기 보다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헛된 욕망인지 혹은 사랑하는 행위인지 말이다. 그것이 친구가 되었건 연인이 되었건 사업 파트너가 되었건 어떤 사람이든 말이다.
세상은 명확하지 않다. 사실 명확해지려는 건 인간의 욕구에서부터 기인하는데, 그 명확함이라는 것 또한 여러가지 성향과 성격을 지닌다.
어쩔 때에는 명확성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배려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정말 상황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명확해야 한다는 사실은 말도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단호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 해를 지속적으로 끼친다면 단호하게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유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나빠보일 지 착해보일 지 고민할 시간에 단호하게 무언갈 해낼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나의 삶을 존중하고 내 작품을 존중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타인의 작품 또한 존중하기에 오늘 하루는 엄청 단호해지고자 했던 것 같다.
그게 모든 삶과, 문화예술과, 돈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것들은 소중하니 소중한 것들을 아껴주고 소중히 여겨주고 소중히 생각해주고 해가 되는 것의 싹은 잘라버려야 한다. 누구나 스스로 날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