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강도영

by hari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재밌는 경험을 했다. 스위스의 한 마을의 뷰 포인트에 앉아서 노을과 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셨다. 처음에는 술이나 약에 취하셨나? 하고 멀리 앉아서 지켜보는데 가지고 온 작은 촛불을 키며 자신의 아들과 손자가 저기에 있다고 하며 위를 가르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있다는건가? 추모를 하러 온건가? 했는데 알고보니 할아버지의 아들과 손자가 반대편 산에 트랙킹을 하러 갔다가 베이스캠프를 세워 그 쪽과 잘 있다는 신호를 주고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저 산에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작은 불빛 하나로 저 멀리 산 안에서 소통이 가능할까? 의심도 들면서 모든게 너무 흥미로웠다.


해가 다 지고 어두워졌을 때 반대편 산에서 그 아들과 손자가 할아버지가 보내는 빛을 알아채고 그쪽에서도 빛을 보냈다. 작지만 강한 불빛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할아버지와 함께 신나게 그 쪽을 향해 핸드폰 후레쉬로 신호를 보냈고 할아버지도 너무 고마워하면서 아들과 손자에게 페이스타임으로 한국에서 온 가족이 도와줬다며 서로 소개 시켜 줘서 인사도 나누고 후에 우리에게 너무 고맙다며 근처 교회 건물로 데려가 한 아카펠라 합창단이 스위스 전통 요들송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 시켜줬다. (악기 하나 없이 오직 사람의 목소리로만 풍성하고 꽉 찬 다양한 소리를 내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 몇년 전 영국여행에서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너무 좋아 이 노래가 뭔지 검색을 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 인터넷이 안되어서 급한대로 나중에 검색을 해보자 하고 일단 녹음을 해둔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와 녹음을 켰는데 노래만 녹음 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대화소리,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등 그 거리의 생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나는 그걸 듣고 생각치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어서 그 때를 더 아련하게 기억 할 수 있었다. 후에 그 음악을 찾아서 깨끗한 음원으로 들으면 당연히 그 때가 생각나고 추억이 있는 노래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소음이 들어있는 그 녹음이 더 좋아서 그 후로 여행을 가면 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상적인 것을 하며 녹음기를 켜기도 한다.


나는 예상치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세히 짜여진 계획적인 여행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여행에 가서 길도 잃어버려 보고, 계획에 없던 공연도 보고, 현지 사람들과 만나서 놀기도 하면서 낯선 상황에서의 나를 마주하며 내가 뭐를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고 마음속에서 언제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는 나만의 책이 될 수 있다.


여행은 출발 전에는 설레게 만들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고, 여행 중에는 좋은 일이 생기면 배로 좋은거고 나쁜일이 생겨도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쿨하게 넘길 수 있고, 여행 후에는 지치고 힘들 때 그때의 추억을 원동력으로 삼아 버틸 수 있는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쳤던것들이 몇박 며칠 이라는 시간의 제한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 때의 향, 듣던 음악, 먹은 음식, 그 날의 날씨, 햇빛, 식당의 분위기 등) 소중히 느껴진다.


시간은 흘러서 여행 끝과 함께 사라지지만 그때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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