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3살 무렵에 크레파스를 가지고 거의 반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기 하리 사진인데, 이모가 가끔씩 나를 맡아서 돌봐줄 때마다 어린 하리는 예민해서 승질도 많이 내고 까다로운 아이었는데, 손수건 하나와 크레파스 하나면 그거 하나가지고 몇 시간 동안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는 화가셨고, 나는 어릴 때 종종 이모집에서 몇 달 동안 방학에 내려가 있기도 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 했던 미술학원을 가는 길이었다. 시냇물을 지나서 가야 하는 길이 있고 대로변의 길이 있었는데, 나는 항상 시냇물을 지나가야 하는 길이 더 좋았다. 이모는 왜 그렇게 길을 빙빙 돌아가냐고 뭐라 했었지만 나는 그냥 그 징검다리 건너는 게 좋았고 그 순간순간 하나가 너무 좋았다.
지독히 효율충인 나는 시간 관리나 스케줄 관리에 굉장히 예민한 한편,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이 효율적이지 않아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온전히 쏟는다. 그래서 예전에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했는데 밖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는 걸 무척 좋아했다. 특히나 2017년도에 이태원에서 살았을 때에는 400번 버스를 타면서 보광동 쪽의 한강을 건너면서 시가렛 에프터 섹스 노래를 듣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항상 이태원역 4번출구를 지날 때마다 그 생각이 어렴풋 나서 그 때의 이태원이 여전히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릴 때에 화가라는 꿈을 가져본 적이 딱 한번밖에 없다. 나의 꿈은 줄곧 바뀌었는데, 목사님에서부터 시작해서 헤어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수녀님, 선생님 등등 이것저것 참 많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았으면서 항상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수첩을 들고다니면서 학교 쉬는 시간이나 내 자유시간마다 연필을 놓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나는 소묘나 정물화도 무척 좋아했지만 그냥 내가 생각해서 그리는 그림들을 더 좋아했다. 일기를 쓰는 대신에 그림을 더 많이 그렸고 내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을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진학을 예고로 갔는데, 나는 사실 그냥 인문계를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예고 입학 서류 내기 한달 전에 담임 쌤이 갑자기 나보고 예고에 가라고 했는데, 미술반 선생님은 예고를 가지 말라고 극구 말리셨다. 왠지 모르게 예고에 가야만 할 것 같아서 거의 도박과도 같이(?) 서류를 냈고 예고에 다니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아카데믹한 그림에 진절머리가 나서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아야지 싶어서, 현대미술 수업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교수님의 말에 따라서 정말로 아무거나 했는데, 매일매일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하고 그림 이후로 처음으로 가슴 떨렸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때에 누가 비웃어도 나는 글 쓰는 작가가 될 거고 칼럼니스트가 될거야 라고 내 자취방에서 혼자 불끈불끈 힘을내면서 혼자 감동받고 글을 썼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때 베르나르 뷔페의 칼럼을 썼는데, 밤 10시까지 혼자서 침대 위에서 주구장창 글을 쓰면 그 때 앓았던 불안증마저 사라지는 체험을 해서 나는 그게 너무나도 행복했다. 글은 나를 숨 쉬게 했고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일러스트레이터를 하고자 했던 꿈이 사실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체도 좋아했지만, 그림을 상업화 시킨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작업을 할 때 순수회화 작가 성향이 너무나 짙은 나는, 글을 쓰는 도중에 갑자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같이 일을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으로 갤러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림을 안 그리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사실 하루에 2개씩 드로잉은 꼭 했었다(이런 모순적인 인간!). 그게 모이니까 몇백장이 되고, 그게 모이니까 자연스럽게 그 갤러리에서 2인전을 하자는 제안을 보내왔다. 그러다가 2인전 중 다른분이 바빠서 못 하게 되었고 나는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내가 내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개인전을 했던 그날 새벽에 엄청 울었다. 나는 정말 절대로 화가를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그날 그냥 세상이 나를 그림그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걸 거부할 수가 없었고 앞으로의 고난을 다 알고 있었는데 어차피 거부해봐야 다시 되돌아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로 다른 생계를 위한 직업들은 항상 고민했다. 별의 별 일을 다 해봤는데, 그러면서 떠돌아 다니며 생활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히피였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작업적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치 않았던 일들을 했던 게 여전히 너무나 아픈 경험들도 많지만 그것 모두에게 감사하다. 결국 그것들을 해봤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곁에 있는 일들이 작건 크건 정말 똑같이 다 소중하다는 걸 서서히 깨닫고 있다.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그리고 내가 무언갈 할 수 있음에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그냥 있는 그대로 그게 얼마든 상관없이 다 고맙다.
작업을 하느라고 칼럼 등의 글을 안 쓰다가 요즘 들어서 다시 쓰고 있다. 글 쓰는 건 편하면서도 어렵기도 하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부담없이 촤르륵 써 지는 글이 있는가 한편, 정말 지극 정성을 들여서 쓰는 글들이 있다. 그것들에는 정말 큰 압박과 부담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느껴서 그것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정말 시원하게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이 좋다.
그래서 나는 미술작가이기도 하고 글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명확히 무어라 정의내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모델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하다. 영상 편집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공동 창작하는 디렉터이기도 하다.
20살 때부터 간간이 프리랜서로 모델을 하고 있는 것은 그냥 내가 사진찍히는 걸 좋아하고 재밌어서 하는건데, 사진작가님마다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와 잘 맞지 않아서 불편한 분도 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작가님과 사진 찍힐 때 온전히 나의 재능이 담기는 것 같아서 좋은데 그 재능이라는 건 나의 특기가 아닌 다름 아니라 그냥 온전한 자연스러움이다. 내가 슬플 때 정말 슬픈 표정을 짓고 기쁠 때 정말 기쁜 표정을 짓는 사진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내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지닌 동시에 모델이라는 타이틀 또한 있는 게 어쩔 때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그건 순수예술과 상업의 충돌이라는 생각 때문에 있었는데, 이제 나도 나의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충분히 모든 나의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그걸 뛰어 넘어서 제일 좋은 무언가는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온전히 감각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행위에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정보성까지 있으면 정말 좋다.
그냥 온전히 나 자신이 되려면 온전히 내가 스스로 깊게 느끼고 감각하고 깨달아야 하는데, ‘내가 잘 해.’라는 허영심 보다는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공기와 향, 감촉 등에 대한 관찰과 고찰을 직업 속에 넣는다면 그 사람은 ‘잘 하는 사람’ 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 이 될 것이다. 사실 잘하는 것을 뛰어넘는 건 즐기는 것인데,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잘하는 사람보다 더 잘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잊어버릴 때 정말 순간적으로 폭발력 있는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고 본인 스스로도 행복하다. 그게 직업이 가진 이름표를 떼어내고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직업이 여러개인 게 너무 좋고 모든 기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