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리
나는 차라리 완벽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런 불완전함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것들을 취하고자 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내가 제일 빛났을 때들이 내가 제일 슬펐을 때들과 비슷하기도 했다. 외모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서 불행해지지도 않고 행복해 지지도 않는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려있다. 대신에 나는 내 명함과도 같은 내 외모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가 어떻게 본인을 소중히 가꾸어 주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는 발레를 하냐는 소리와 에쁘다는 말이었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내가 예쁜가?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언제는 예쁘기도 하고 언제는 안 예쁘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예쁘다는 것이다. 그건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예뻐야 할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직업이 되어서 발현되어야 할 때에는 언제나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고 대중 앞에 나와있을 때 언제나 완벽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럽지만 언제나 해내야 한다. 사실 거기에서부터 얻는 충만함도 있지만 동시에 결핍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하튼 거기에서 배움도 있다.
나 또한 누군가를 봤을 때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안전하고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 같다. 내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끌리는데, 그것이 찰나의 순간적 매력이 아니라 정말 오래 만나 보았을 때 얻어지는 새로움에서부터 그 사람에 대해서 호감이 생기고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건 안락함과 안전성에 기반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금방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하게 우려냈을 때 그 사람이 보인다. 그래서 언제나 누군가를 만날 때 오랜기간 두고두고 만났던 지난 날들의 이유는 바로 이것에 기반한다. 스쳐지나갔던 사람은 참 많지만 결국에 내가 제일 사랑했던 몇몇의 이성들은 대부분 수년간 걸쳐서 만났던 사람이기도 한데,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건 시간에서부터 걸친 편안함과 짙은 애정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사랑의 유효기간인 3년이라는 일반적 상식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가 똑똑하길 원하고 아름답길 원한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나를 이미지화 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서 나는 멍청하고 아름답지 않다. 그런 것도 스스로 인정해야 비로소 똑똑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창조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많은 평가를 받고 다니고, 누군가는 나의 몸에 대하여 나의 얼굴에 대하여 많은 평가를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직업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이제는 어느정도 무시는 하지만 아픈 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관찰해 보았을 때 본인의 부족함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투사해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걸 알 수도 있었다. 나는 어떠한 대표님과 일할 때 그 사람의 사람됨을 우선시해서 본다. 그 사람이 인성적으로 올바르고 좋은 사람인가? 라는 걸 먼저 보는데, 결핍에서부터 부족함을 채우려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완벽한 그 지점에 다다르고 성취하게 되지만 결국 본인이 느꼈을 때 그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으며 다시 자신의 불완전함을 목격하고 다시 완벽함을 위하여 쳇바퀴도는 다람쥐처럼 일하게 된다. 그 속에서 결핍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것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다시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성취해가지만 결국에 남겨진 것은 공허한 자신 뿐이다. 나는 그런사람과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이 있으면 여전히 그런 방식대로 평가받고 불완전한 모습을 감추고 완벽하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는 너무나 아프기 때문이다.
대신 지금 당장 실수하고 지금 당장은 불완전해 보이는 모습 자체를 인정하고 인간이 지닌 부정적이라는 속성이라고 흔히 불리는 슬픔, 화, 불안, 결핍 등이 있기에 어쩌면 인생이라는 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런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냥 싸우지 말고 그대로 남겨두면 된다. 그것들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건 불가피하다. 결국 가장 아픈 것들을 그대로 남겨둬야 그것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가장 불완전해 보이는 것들을 포옹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그것들의 먹구름은 사라지고 완전한 나 자신만 남는다. 완전하다는 건 부정성의 제거가 아니라 부정성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요즘에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내 곁에서 떠나는 게 아니라, 내 곁에 남겨지고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주 견고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 잘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 즐기는 사람들, 하지만 욜로족이 아니라 미래까지 계획하며 충실하게 자신의 삶의 건물을 튼튼하게 만드는 사람들. 작은 돈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작은 기회도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친구들 중에서 돈이 없다고 돈을 더 많이 벌거라고 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 결과, 돈을 아무리 벌어도 잘 모으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고 절제하면서, 꼭 써야 하는 부분에 효율적으로 지출하면서 동시에 투자하는 방식을 배워서 똑똑하게 투자하고 건실하게 자신의 삶이라는 건물을 지어 나가면 되는데, 아무리 많이 벌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내가 그러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떠한 삶이든 충실하고 성실하며 온전하고 결핍도 바라보고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내 곁에 둔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풍족해지고, 작은 것들까지도 감사할 수 있게 되며 비로소 건실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이 존재하는 게 중요하며, 작은 것에도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알면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는 그릇이 생긴다. 그 그릇 속에는 정말 풍성하게도 많은 것들이 들어가며 그것들을 나눌 수도 있다. 사실 나눈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우리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며 그것을 통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데 그것이 진짜 자신을 돕는 길인 것 같기도 하다.
결국에 미성숙하고 미완성적인 나 자신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것들을 하루에 몇 번이고 실천하기 위하여 존재함을 느끼면 내가 예쁘건 잘났건 중요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게 되며 조금 더 성숙하고 건실하고 온전하고 겸허한 인간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 또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