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는 과정

박하리

by hari

나의 스케줄들에 적응하고 있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무언갈 목표로 항상 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설정한 다음에 바로 잊어버린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면 끝도 없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욕심도 내려놓았다. 완전하게 완성을 해야지 이 생각으로 임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 집착도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들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요즘엔 무언갈 온전히 감각하려고 한다. 내가 “잘 해야 돼.”라는 강박이 있을 때마다 “못 해도 돼.”라고 예전에 나는 나를 그렇게 타일렀었는데,

이젠 그 말이 아니라 “온전히 지금 이 순간 감각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자.”가 되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하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감각하게 되면 시선에 상관 없이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

완벽하고자 하는 욕구는 시선에 대해서 많이 상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결과에 집중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대충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바빴던 스케줄들 사이로 다 완성을 해야하고 계획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던 이유는 다 잘해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제대로 완성만 하자, 로 바뀌니 더 빠르고 제대로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 것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날 때마다 혼자 괜히 뿌듯하다.

그래서 어떤 것에 무척이나 흥분하거나 고양된 상태로 머물기 보다는 온전하게 온화하게 머물려고 많이 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늙는 게 무서웠는데, 늙으면 할 수 있는 게 제한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늙는다는 건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그건 축복이자 감사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우리집이 강남에 있다보니 성형한 사람들을 엄청 많이 보는데, 그래서 그런 것들이 이제는 어느 순간 익숙해 졌지만,

저번에는 성형을 엄청 심하게 하신 분이 계셔서, 사실 그것도 그 사람의 자유지만, 나는 그 사람을 보고 나의 내면까지 봤던 것 같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두려움이 내 속에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그 때 정신이 번뜩 들었던 것 같다.

흠이 생기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언제쯤 나는 그걸 깨닫고 인정하게 될까?


오늘도 이것저것 정리하고 행동하느라고 수고가 많았는데, 이럴 때 일수록 나는 존재하는 시간을 더 늘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행동하지 않고 말이다. 생각도 흘려보내고 지금 이 삶을 존재함을 느끼는 것. 그 행위가 있어야 진짜 산다는 느낌을 얻기 떄문이다.

여전히 할 것들이 쌓이고 지속적으로 계속 쌓이고,

참 감사하게도 할 일들이 계속 생기고, 그것들을 계속 해 나갈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내가 스스로 꾸는 꿈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꿈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실감한다. 내가 세상의 하인이 되어 일하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것들을 일컬어 신이라고 형용하나보다. 그런 자동적인 움직임들이 참 신기한데,

언제나 내가 힘이 들 때마다 작품들을 보면 혼자서 괜히 사랑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건 여전히 이상하다. 무목적성이라는 것. 어른이지만 아이같이 생각하는 것. 시대가 바뀌고 내가 바뀌고

내가 사회화 되더라도 난 여전히 나의 그런 면모가 제일 좋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친구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았다. 정말 잘 움직이는 친구인데 언제든 보면 웃고 있는 아이인데 이상하게도 가슴 속에는 썩어있는 상처가 있는 것만 같아서

내가 작년에 많이 안아줬다. 나는 그 친구가 해맑게 웃는 걸 좋아하고 그 친구의 어렸을 때 사진을 좋아한다.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는 행동을 하는데,

문득 여전히 그 행동을 받을 때마다 낯설지만 그 아이도 나를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정도 사랑했구나 싶다. 오늘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 친구가 제일 많이 생각이 났는데,

조만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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