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하는 자아>

김하은

by hari

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모습들을 돌아볼 때마다 내가 많이 변해왔다고 생각한다.

성격이나 생각, 가치관까지 모든 부분들이 나도 모르는 새 계속해서 바뀌어있었다.

무기력하고 불안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며 살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갔고 그 발전들이 나를 조금은 안심시켜 주는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그 자리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흘러가는 물결처럼 계속해서 눈에 띄지 않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포도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들이 나를 채우고, 우리는 계속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 지고 있으니까 그게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닐까?


삶에 나타나는 여러 상황들을 만나고 다양한 나를 마주하면서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아왔는데

그럼에도 쉽게 변하지 않고 단단히 자리 잡은 하나의 자아가 있다.

혼자 남겨질 때 만나는 자아.

평온하고 단단한, 있는 그대로 온전한 자아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쓸것도, 무언가 만족감을 얻기위해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평온 그 자체의 상태에 있는 나.

부끄럼 많고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없이 어려지고 작아지던 나도 혼자 남겨진 그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차분하다.

나는 이 모습이 가장 편하고 좋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런 모습이 나도 모르게 툭툭 나온다.

이런 자아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알아차리는 나, 배경자아 와도 비슷한 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정확한 근거는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

이런 변하지 않는 자아가 삶을 꾸려나가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발전되고 변화되는 내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나이를 먹을 수록 편한게 좋아지는 중인데, 자연스럽지 못함은 결국 오래가지 못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평안하고 ‘나’다울 수 있는 곳과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이런 행동이 나를 발전시키기 보다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냥 나로서 사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알게 될 수록 내 진심에 가까워질 수 있는것 같다.


어릴적에, 아니 최근 까지도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사회적 존재에게 페르소나란 필수적인 것이며, 그게 더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맞이하게 될 30대의 삶에서는 좀더 자연스럽고 평안한 상태에서 관계를 맺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쓰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법에 대해 경험하고 살아가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애써본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나에게 맞는, 유연하고 능숙한 방법을 미리 일찍 터득 했다면 좀 더 편하게 살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애쓰며 살았기 때문에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편함을 선택하려는 내 행동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 모습을 목표로 삼고 노력을 통해 완벽해 질 수 있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내가 그걸 믿고있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한채 열심히 애만 썼다.

벽에 부딪히고 주저앉는 순간들을 수없이 반복하며 깨달은 것이다.

내가 했던 노력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영역 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노력했던 시간들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조금 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알 수록 삶을 조금 더 자연스럽고 평안하게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변하지 않는 가장 정수의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그 자아를 더 선명히 하는 것이 다른 사회적 장면들에서의 자아의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내 다양하고 예측 불가한 삶의 필수적인 일이다.

어디에 더 노력을 쏟아야 할 지, 어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유영해야 할지 구분하면서

이제부터 조금씩, 조금 더 나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을 맛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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