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에서 디렉터로

by hari

나의 삶은 내 머리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 가슴이 원하는대로 나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어쩌면 굉장히 동물적이고 직관적인 삶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서 항상 완벽하게 항복해서 삶의 흐름을 따르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방종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완벽할 정도로 법칙과 함께하는 느낌이다. 그건 굉장히 규칙적이고 안정적인데, 내가 세상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타기를 잘 하려면 나의 코어중심이 T자 모양으로 힘을 잘 주고 세상의 흐름을 잘 타야만 잘 살겠다는 걸 요즘들어 더 많이 느낀다. 즉 어느 환경이든 스스로가 중심점을 잘 잡으면 되는데,

점프를 뛰더라도 무겁거나 하강 에너지로 잘 뛰려고 하면 오히려 못 뛰고, 상승 에너지로 아주 가볍게, 하지만 코어 자체에 힘을 제대로 주고, 어깨와 광배의 힘까지 활용해서 튼튼히 지탱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점프를 잘 뛰는 원리와도 같은 것 같다. 즉 높이 뛰려면 밀도감과 정확도와 힘과 근육이 필요하다.


삶을 사는 것도 똑같다. 힘을 풀어 놓는 상태와 침묵이 가장 큰 힘이다. 하지만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와 세월, 밀도감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내려놓을 수 있는 힘과 가벼움이다. 한 가지의 단어가 백가지의 문장을 이긴다. 침묵과 현존이 과거와 미래를 이긴다. 그것을 겪어내려면 스스로 단련시키는 것 뿐인데 그러려면 단지 규칙적이고 일정하고 안정된 토대가 필요하다. 그 안정성 위에 모험을 발휘하면 그것이 바로 자유다.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제일 힘이 강한데 나는 그렇게 사는 게 나의 목표다.


이전부터 내가 되고싶다는 이미지를 아카이빙하곤 했는데, 신기할 정도로 영화감독님들이 많았다. 혹은 영화음악감독인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혹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님, 혹은 현대미술가 올라퍼엘리아슨, 설치미술가이자 현대미술가 우고론디노네, 등등 변함없이 내가 꾸준히 사랑해오고 있는 그분들의 특징은 디렉터이다. 나는 그림을 사랑하는 만큼 문화예술을 전반적으로 사랑하고, 나의 중심점은 회화이지만 그만큼 다른 영역에서도 욕심이 많다. 그래서 흐르는대로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바로 디렉터의 길이다.


나는 처음에는 잘 하고 싶고 좋은 디렉터가 되고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젠 그게 아니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날텐데 그들에게 모두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균형에 맞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 즉 난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은 사람이 필수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세상과 균형을 찾을 수 있을 지 생각해보면 그저 제대로된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야에 직접 나서서 현장일을 하는데, 그 하나하나의 체험들이 작든 크든 재밌고, 어떠한 일을 하든 크기와는 상관없이 내 사업한다고 생각하며 하면 결국엔 내 꿈에 다 도움이 된다. 난 그저 미술작가는 아니다. 그건 내 길이면서 동시에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 것 같아서,

문화예술의 하인이 되어 일하는 것 같은데 그게 참 떨리고 설레고 재밌다.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제대로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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