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끝냈으니 다시 기획하고 싶다. 전시랑 공연

by hari

요즘 나는 크리스마스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서 신나(?) 하면서 다닌다.

작업을 많이 하려고 드로잉을 시간을 맞추어서 규칙적으로 한다.

누군가는 이 때 나이에 이정도 벌어야 하고 이 때 나이에 이정도 해야한다, 이런 관념이 있을 때에는

나는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스스로 자유함을 즐기는 편으로 살았다지만 아무래도 그런 관념이 물들었던 때도 있었다.

한 발자국 멀리 물러나서 바라보아야지 자유를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사회와 더불어 살되 너무 빠져있진 않으려고 관조하는 편이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게 항상 참은 아니다.

창작은 인정욕구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표현일 뿐이다.

그 이상의 무엇을 바라면 결국엔 내가 만족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빠질 거리라는 걸 아니까

스스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뿌듯해 하는 수밖에 없는 게 창작의 길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제 제프쿤스 작품들 서치하다가 느낀 건, 제프쿤스를 누군가들은 싫어하는 작가이긴 하지만(너무 상업적이라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몇 번 봤다.)

나는 그 분의 인생을 그래도 존중하고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5년간 금융가에서 일하고 마케팅을 배우면서 자신의 작품에 투입시켜서

'가치'라는 것을 바꾸고 그를 통해서 부를 창출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노동보다 더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가치가 높아야 비로소 가능한 건데,

그 정신적인 것이라는 건 무의식적 습관 덕분에 한 번에 바뀌는 게 아니라 정말 커다란 밀도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에 눈에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중한다.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지만 미래에 부족할 수도 있는 그것들에 대해서,

미래에 부족할 것이라는 관념에 초첨을 맞추는 것이 아닌,

어차피 사라질 것들이지만 '지금 나에게 있다.'라는 것에 초점을 가지면

그 소멸성이 아쉽고 소중해서 더 소중히 대하고,

여하튼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더 소중히 대할 수가 있다.

일을 하면서도,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삶이라는 것이 나에게 가까이 있고 내가 하기 싫은 것까지 하게끔 시키는 이 삶이 나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내가 더 모험하고 더 커지길 바라고,

내가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꿈, 내가 원하는 스튜디오,

그런 것들 다 갖게 해주려고 더 다양한 방면으로 나를 시키는구나 싶어서

좀 아프더라도 꼼짝 말고 삶에 수용하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

그게 삶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 같다. 나를 강하게 키우려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 저항하지 않으면 저절로 나의 운명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언제나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걸 들을 때마다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엔 반짝거리고 눈길을 끌고 한 번에 쉽게 올라가는 소모적인 것 말고

은은하게 반짝이며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성실하고 점차적으로 천천히 올라가며 밀도감 높은,

나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된 것들 말이다. 반짝거리다가 훅 꺼지는 가짜 말고, 아주 천천히 올라가서 영속적으로 우뚝 서 있는 진짜의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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