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울 일이 없고 바쁘기만 했는데,
내가 왜 바쁘나 이유를 생각해보니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일을 벌려놓았다가, 내가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일을 하고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하고
그동안 쌓아온 실패와 비난 등에 의하여 쌓아온 눈치밥과 타인을 생각해서 나에게 지불하는 돈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해서 무언갈 하곤 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로 인해서 날 찾는 사람이 정말 많아지고, 내가 일이 너무 많아서 거절해도 끝없이 찾아줘서, 돈 버는 일도 너무 재밌고, 모으는 것도 재밌고, 관리도 재밌고, 무엇보다도 내가 무언갈 해 낼수 있다는 성취감이 제일 좋아서 계속 하고있었다.(사실 그러다 조금 지쳤다.) 지친 이유는 여하튼 나는 미술작가이기 때문에인데, 그림그리는 건 언제나 좋지만, 그 이외의 일들 중에서는 하기 싫은 것도 있는데, 하기 싫은 일들도 꾹 참고 했다.
옛날같으면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기 싫은 것 까지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효율과 최고의 능력자인 거 같아서, 모든 걸 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잘 하려고 했고 난 항상 될때까지 한다. 그냥 성격이 그런 거 같다.
그러다 문득 다시 그림이 너무 그리웠고 무용이 너무 그리웠고 맹목적인 창작이 너무 그리웠던 것 같다. 동시에 지난 일년 간 헤어졌다 사귀었다 밥먹듯 반복했던 전남친도 사라지고 나는 완벽히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어제 문득 들었는데, 일을 열심히 하고 그걸 좋아하다보니 후회 없지만 문득 나라는 사람은 왜 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내가 정말로 고아같았다. 원래 항상 고아처럼 자라와서 차라리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더 안심이었다가 전남친이랑 같이 있었던 시절은 오빠가 가족같고 내가 원하는 다정한 아버지같아서 그 사실에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정말 좋은 거구나 라는 걸 느꼈는데, 돌연 그 사람까지 사라지니 더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다시 만났을 거 같은데, 또 문득 생각해보니 다시 만난다는 건 결핍에 기여하여 만나는 것이므로 그 사람이 있든 없든 잘 사는 편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에 그냥 혼자 독거노인으로 살아도 그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아야지 다시 결심했다. 난 엄마가 밉지만 이제 그 사람의 행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를 키운 방식과 가정에서 했던 행동들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가 있다.
엄마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을 제치고 아빠와 결혼했는데 결국엔 외모로 맺어진 결실은 그리 돈독하진 않다. 나는 그것때문에 정말 큰 상처들을 받았는데 결국에 본인의 상처를 투영한 결과물이 나라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내 인생 반 이상을 노력했다.
엄만 결핍 투성이 같다. 사랑받기 위해, 의존하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항상 남을 조종하고 어린 나에게마저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한시간동안 펑펑 울었는데, 내가 난생 처음 우리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같다고, 엄마라는 역할같다고 느낀 게 3년 전의 엄마였는데 그 때에는 나를 원없이 사랑해주었고 나는 살면서 난생 처음 엄마라는 사랑의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가족의 사랑이 좋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다 엄마는 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언제나 책임감 없고 언제나 본인이 가장 중요해서 자식조차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긴 싫어서 사람들에게 온갖 착한 척는 다 하는 정신병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나는 여전히 엄마를 용서할 순 없다. 증오하진 않지만 어렸을 때 상처받은 나를 위해 용서라는 건 나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엄마를 이해할 순 있다. 커가며 조금씩 느끼는 것 같고 특히나 전남친을 만난 뒤로 더 많이 느꼈다. 아무리 누군가의 품이 달콤하고 내 존재를 더 격상시켜주는 것 같은 상대라도,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변하면 그건 모두 다 물거품이라고. 운명적인 상대는 없다. 다만 그저 운명이라고 믿는
것 뿐이고 결국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나는 아무리 아빠같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품이 달콤하더라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나 스스로의 엄마가 되어서 그냥 차라리 나 혼자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혹은 정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건강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 의존함 없이 아름답게 살라고 하고싶다.
결국에 난 여전히 누군가의 어여쁜 사람이 아니다. 난 나다. 내가 못나건 잘나건 난 어여쁜 나 자신의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