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했을 때에는 자유라는 것이 너무 아득해서 그 느낌조차 무엇이지 몰라서 항상 갈망하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고 나서 모든 걸 내가 다 통제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자유는 항상 나에게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것이 무섭고 겁이 나서 불안정한 삶 자체가 힘들면서도 그래도 이악물고 살아보겠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애정 때문에 정말 행복한 히피처럼 지낸 나날들이 있었다. 나는 그 때가 너무나 힘들면서 동시에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다 지나고 나에게 정말 스스로 정직하게 물어보았을 때 내가 항상 원하는 건 안정과 자유, 이 두가지였다. 이 두가지가 성립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겹치지 않아지는 것들이라서 나는 그것들을 가질 수 있을까, 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날들이지만 결국 난 지금 안정적이면서 자유롭다.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그 상태에 있으니 내가 그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그걸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든 예측할 순 있어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는 없는 사실이기에 내가 자만해하며 나의 완벽한 안정과 자유를 통달했다 라고 거만하게 말할 순 없는 건 사실이다.
다만 자유와 안정이라는 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내가 지금 어떠한 마음가짐인 지 알 수 있고 그것을 단호하게 제어하거나 혹은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양면적인 상황이 동시에 가능한가.
내가 사랑한다고 칭하는 사람이더라도 나에게 악을 끼치거나 혹은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으면 차갑게 거절할 수 있는가.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더라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안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있게 걸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현재를 소모시키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버리는 것도 아닌, 현재와 미래 동시에 두 가지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탄탄하고 성실한 기반 위에서 점진적으로 사소한 행위 하나에 신경을 쓰고 감사해 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모든 큰 것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되는지를 알고 있는가.
이게 안정과 자유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스스로 멋지다고 판단 ‘당해지는’ 소극적인 입장이 아니라 내가 무언갈 성취하고 이루어나가는 것도 참 멋지고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과정 속에서 빠져 있어서 내가 스스로 기뻐할 수 있고 그 기쁨이 잔잔하게 무언가를 진득히 느낄 수 있는 깊이를 지녔냐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누군가에게 예쁨받고자 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내가 건강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스스로 인정해주고 소중히 아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럼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들 또한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데 나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결국에 완벽을 향해서 강박적으로 도달하려는 욕구는 인간을 더욱 불안정하게 존재하게 만들고,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한 요소마저도 문제삼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인정해주는 태도에서부터 완벽을 쟁취할 수 있는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닌, 논리적이긴 하나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진정성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다리라는 믿음은 여전히 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매 순간 완벽한 계획과 함께할 순 없어도, 나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위해서 하는 계획들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것이 안정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자 어떤 상황에서든 융퉁성을 발휘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는 수용도를 가진 자유이다. 자유로움은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장애물이 많아도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수용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