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원예술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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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생소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익숙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어쩌다 보니 다원예술 작가가 되었다.
최근에 만난 중학교 때 친구에게 들었던 가장 감사했던 말이,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엄청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독히도 외롭고 고독한 길인 것 같다. 금방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피드백도 없다. 게다가 순수 회화 작가랑도 차별성도 있기 때문에 공감도 많이 못 받는 직업이지만 언제나 목표는 뚜렷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눈에는 틀린 것 같은 이 길을 꼿꼿하게 걸어가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수많은 장애물들을 제치고 가기보다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삶을 믿어야 하고, 꾸준함과 성실함과 규칙성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 그건 누군가가 오롯이 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너무나 큰 감정 기복이나 혹은 불규칙한 생활은 피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작가가 될 줄은 몰랐고 게다가 다원예술을 할 줄도 몰랐다. 그림은 너무나 사랑했기에 나의 도피처인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습관적으로 그려댔고, 어쩌다 보니 어린 나이에 전시를 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이 길을 밟고 있다.
그러다가 작업하는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는 순수회화만 하기에는 아까워.”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엇인가 맞은 듯이 불현듯 작업실에 가서 엄청 신나는 마음으로 건축 재료 위에다가 자개를 붙이면서 작업을 했다. 그 작품은 최근에 팔렸고, 그때의 에너지가 미래에 가 닿은 듯이, 나는 그때의 내가 찾은 꿈인 다원예술을 하고 있다.
모든 것들은 다 재미로 시작했다. 사실 재미 말고 다른 요소들이나 목표들을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면 병나듯 아팠고, 내가 무엇인가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아팠던 것 같다. 하지만 그냥 재미로, 체계성을 가지고 하더라도 재미로 하면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기회들이 왔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 내기도 했고, 내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브랜드 촬영들도 많이 했다. 큰 것부터 바라보지 않고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했다.
일을 배워보겠다고 시작한 협찬이나 브랜드 촬영 일들도 나의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 직업인가? 나는 나일뿐이지만 어디에서든 직업이 바뀌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혼란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재밌었다. 물론 내가 잘 해내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 브랜드나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부터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활력이었다. 동시에 미술 전시 등을 어느 정도 쉬고 있었어서(하지만 그래도 작년에 전시를 5개를 했던 것 같다.), 나의 팬들이 떠나갔다는 점에 있어서의 상실감과 허탈감도 많았다. 결국에 내가 원했던 것은 예술계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사실이 내 목표하는 방향성과 꿈이었다. 그게 내 보람이었고 내가 누군가의 힘이 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왜냐하면 나도 많이 힘들어 봤고 그 뼈저린 간절함을 너무 어린 나이에 많이 느꼈었던 것 같다. 언제나 이방인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독립적인 사람의 특성이 되어서 나의 에고를 만들었지만 결국 나를 도와줬던 것 또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진심을 담아서 작품을 담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자체가, 내가 그들에게 밥을 사주고 물건을 주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큰 지지와 용기를 주는 것 같아서 그런 진심들이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미술 쪽으로 그런 것들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속상해하고 있었던 찰나에,
내가 운동 쪽으로든, 무용 칼럼으로든, 혹은 건강으로든, 브랜드 촬영으로든 여하튼 어떠한 분야로든 열심히 하고 그들에게 보탬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점들에 있어서 감사하고 결국에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지향하는 바는 그림이기에 그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대신에 소모성을 많이 지니거나 단순히 트렌드로만 한 때인 것들만 하는 건 지양하고, 트렌드와 나 자신의 가치를 융합하는 과정과 연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늙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외모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늙으면 촬영을 못하려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는데 결국에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예쁘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내 성향에서부터 나오는 자신감과 용기에서부터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들이 많다.
결국 나의 첫인상은 외모였지만, 사람들은 나에게서 나오는 힘과 진실성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기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아 할 때 진정으로 내 힘이 나옴을 느낀다.
결국에 어떠한 지향점이 있더라도 그것들이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들이 아니라,
수도 없는 아름답고 예쁜 사람들 중에서 일등이 되는 것도 아니라,
내가 누군가보다 더 잘나야 되는 사람이 되는 것들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는 것.
나 아니라 다른 것들은 잡지 않는 것.
그것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문제들이다.
그 문제들을 동시에 포옹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아픈 것들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죄송한 마음과 자기반성과 함께 할 것.
나의 어떠한 것들을 직면하고 진실되게 존재할 것.
끊임없이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나를 내려놓고 수용할 용기 또한 기르는 것.
요즘에는 그래서 수용에 대해서 연습하고 있고, 집중하는 것들 또한 연습 중이다.
결국엔 완벽한 사람들은 없는데,
이렇게 반복되고 규칙 된 것들이 지루해 보이지만,
아주 조금씩 운동해서 늘리는 것이 정말 안정적으로 몸을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만들듯,
그림도 똑같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운동 그 자체도 있지만, 운동을 할 때 근육이 느는 지점은 내가 못 했던 것들을 해 냈을 때 비약적으로 느는데, 그것은 언제나 점진적인 습관적 반복이 있어야 한다. 운동은 그 점들이 쉽게 눈에 보이고 엄청 정직하다. 언제나 발전할 수 있고, 불편한 신체적 활동 자체가 추후에 늙어서는 오히려 건강하게 만든다. 즉 지금 당장 불편한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행동할 때 불편하게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더 좋아한다. 지금 당장 행복한 도파민적인 무언가 들(누워있는다거나 혹은 안 좋은 음식을 먹는 것, 혹은 일을 안 하는 것)은 미래의 나의 힘을 잃게 하는 무엇인가다. 그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나도 내가 잘 못하는 운동은 너무 하기 싫다.
하지만 꾹 참고 한다.
조금조금씩 하다가 늘어있는 나 자신을 보면 그 운동을 가장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결과에 목매달지 말고
진실로 존재하면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일.
나 자신의 성공과 명예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문화예술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결국에 내가 걸어가다가 항상 실수하고 방향을 잘못 틀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내가 막혀있는 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오로지 나 혼자만 잘 되려고 할 때, 나의 에고가 가장 많이 발동할 때가 그렇다.
그렇지만 많은 것들을 반성하고 그 길에 서서 용기를 내서 나 자신을 버리더라도 진실되게 직면할 수 있을 때 마음이 열린다. 그것이 두려움을 뛰어넘는 길인 것 같다. 그 과정이 너무나 아프고 말도 안 될 정도로 아프지만,
마치 내가 스스로 가슴에 칼을 찔러 넣어서 그 칼을 빼내지 못하고 썩혀 두었다가, 스스로 치유를 하려고 직면하고 그 칼을 빼내는 과정 속에서,
아주 천천히 칼을 빼 내고 그 상처들이 아물도록 치료해 주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칼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깨달을 것도 너무 많고 치료해 줄 것도 너무 많다. 그렇기에 더욱 건강해질 일밖에 없고, 그 빼내는 아픔을 마주한다는 것이 인생의 어느 시기이건 언제나 힘들고 어려울 테지만, 결국 계속해서 직면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생에서 해야 할 일들과 나의 업보 자체를 치유하려면 회피하고 있을 수는 없다. 결국에 나는 가장 맑은 피가 내 몸을 타고 제대로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썩은 것들을 빼내고,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동시에 지닌 채로,
가장 작은 것들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며 섬세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내가 지금 하는 작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전히 어렵지만 도 닦는 마음으로 항상 하려고 하고 있다.
순간을 소중히!
요즘에는 자개 작업을 많이 한다. 동양화+자개
남자 친구가 준 꽃을 렌더링 중이다. 맵핑을 하고 하는 중인데, 아직 다듬을 것들이 너무 많아서 형태적으로나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이나 멀었는데 이 수작업이 꽤나 재밌다.
큰 작업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이제 빨리 완성을 해야겠다.
바닥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으면 항상 니카가 내 무릎에 와서 앉아있다. 예전에는 작업실을 약수 쪽에 두고 망원 쪽에 두었었는데, 이동하는 시간이나 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사실 집을 차라리 작업실로 만들어버렸다.
2021년 경에 그렸던 작업. 내가 잘 안 쓰는 나무색을 썼는데, 편안함 느낌의 브랜드와 협업한 작업이다.
이때의 시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유는 참 겁도 없이 내가 해보고 싶은 모험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 다 늙어서 하는 모험보다 젊어서 하는 모험은 의미 있는데, 사실 잃을 게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모험인데, 두려워하더라도 할 수 있는 모험은 다 해봤다. 다 해보고 나서 안정성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 결국 가장 큰 힘은 꾸준하고 점진적으로 매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옛날 작업들에 자개를 붙였다.
요즘 작업하는 재미를 다시 붙이고 있는데 그러려면 몰입력과 순간을 소중히 하는 집중력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분도 소중하다. 1초도 소중하다.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이 가장 감사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