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만났던 분이 나에게 이 말을 했다.
우리 너무 놓지도, 너무 잡지도 말자.
너무 어렸던 나는, 사랑이라고 하면 불같은 열정을 지니고 관계를 맺는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다시와 생각해보니 나는 남녀간의 사랑만큼 어려운 건 없고, 또 동시에 다른 사랑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혼자있을 때가 가장 온전하고 견고하다고 느끼는데 누군가들이 나를 지나갈 때 나는 종종 흔들린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무척이나 필요한 사람이다.
요즘에 치유명상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 한지가 오래 되었는데, 막상 하려니까 내가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고 말을 안 들어주고 고치려고만 했어서 그게 생활과 식습관으로 나타났다.
무언갈 엄청나게 먹는 편도 아니고 식탐이 엄청나게 많은 편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 한 꺼번에 식사를 몰아하는 안 좋은 식습관과 새벽에 계속 깨는 습관이 생겼었다. 그럴 때마다 기이하게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는데 결국에 나 또한 들어주려고 했지만 그게 듣는 게 아니라 피했던 게 맞는 거 같다.
들어보니 나에게 집착하거나 너무 큰 애착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상처나 혹은 가족에 대한 상처,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것에 의한 상처의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에 많은 사람들도 사랑받기 위해 나에게 애착적인 행동을 보였던 것이고, 예민하게 감지한 나는 그들에게 죽어도 사랑이라는 형태의 무엇을 주기가 너무나 싫어서 계속해서 도망다녔던 것 같다. 그럴때마다 상대방들은 여자건 남자건 나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에 나에게 다가온 상대는 나를 보고 너는 타투만 없으면 좋을텐데, 공복에 커피 마시지 말고 클럽다니지 말고 남사친들 만나지 말고 크로스핏 하지 말고 요가나 다니라고 통제하려 했다. 숨이 꽉 막히는 것 같아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이 온전하고 충족되고 단정한 사람이었어서 문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보였지만 그 모든 게 문제였다. 너무나 단정하다는 그 사실이.
사랑이라는 형태는 완벽하고 온전하지만 사람 자체의 조건에 대한 형태를 재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완벽한 사랑을 좋아하기에 누구든 나에게 애착을 보이기 시작하면 조용히 도망가는 편인데,
이전에 나에게 했던 오빠의 말이 더 와닿는 거 같다. 너무 놓지고 잡지도 말자.
어찌되었든 어떠한 관계의 사랑이건 상대를 자유롭게 놔주는 거다. 동시에 언제든 와서 쉬고갈 수 있는 둥지같기도 하고, 안정감 같기도 하다. 언제든 환영하며 언제든 혼자 지낼 수 있게 자립심을 길러주기도 한다.
요즘 나는 치유 명상을 하며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좋아지고 있는데 이젠 밤에 깨는 게 무섭지가 않고, 새벽에 나를 마주할 때마다 이번엔 또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지 기대가 되는 사람처럼 나의 말을 경청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서서히 누구든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마도 친구라는 형태의 사랑에 제일 가까워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며 안정감을 느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그냥 다시 홀로 지내도 외롭지 않고 온전한 것 같아서이다. 사실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 나 스스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 내가 좋아하면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