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요즘 내가 단짝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붙어다니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한 명도 없었다. 난 온전히 혼자였다.
물론 나의 모든 인연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많고 학창시절때부터 이어져왔기 때문에 나는 독특하게도 넓고 깊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소중하고 모두 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엄청 친하다. 하지만 주로 주기적으로 항상 반복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혼자이고, 주에 몇 번씩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거 자체가 괜찮고 혼자인 나 또한 좋은 거 같다.
요즘에는 엄청 행복하다. 오늘 오랜만에 대현오빠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가 살아오는 방식을 오빠에게 말한 건 처음인 거 같다. 수년 전에 여행다니는 것에 미쳐있을 때 항상 외국에 있었는데, 그 때 당시의 나를 생각해보면 지금이랑 상상 못 할 정도로 다르면서도 본질적으로 같은 것 같기도 하다. 오빠는 박서보 선생님을 실제로 뵈었을 때 그 분의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에 놀랐다고 한다. 작업에 미쳐있는 요즘 나는 오빠한테 내 계획을 말하면서 엄청 행복했는데, 그 에너지가 느껴졌을 것 같다.
어제는 영빈이를 만났고, 영빈이도 오랜만에 봤다. 영빈이는 사소한 일상을 좋아하는데, 나의 삶의 양식과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도 언제나 좋다.
발레학원도 외국비자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는데, 내가 외국 나갈 때 그걸로 나가라길래, 나는 기획쪽으로 문화재단으로 기회를 얻어서 추후에 그걸로 나갈거라고 했다. 영빈이는 그건 엄청 어려운 일이니 좀 더 쉬운 방면으로 나가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고 작업을 했던 적이 있어서 플랜 비는 플랜 비일 뿐, 플랜 에이를 직접적으로 해 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작업자가 일을 할 때에,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추후에 작업보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작업은 꿈에서 멀어지고 그 일이 본인의 업이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난 평생 작업자 할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길을 택할것이다. 언제나.
최근 들어서 나 스스로 자문했을 때 결혼은 둘째치고 이제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는 지 의문도 들고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만나겠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서 반복적으로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오버랩 되는 상황들이 계속 있었다. 그 사람은 내 작업을 좋아해줬고 나는 그런 그 사람에게 고마웠고 그 사람을 좋아했다. 결국 엄청 순수하게 좋아한 동시에 언젠가는 내 곁에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언제나 붙잡고 싶었지만 언제든 내 곁에 있는 동시에 잡히지 않는 그 사람을 언제든 기다리는 포지션에서 있었는데 결국에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났을 때 많은 것들이 허탈하면서도 시원했다. 결국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대로 나에게 최선을 다 했다.
나는 요즘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만 본다.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꿈도 없고 욕심도 내지 않는 삶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은 언제든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없는 것은 언제든 내 곁에 없는 것이다. 나는 갈망할 필요도, 구걸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든 내 것은 진득하게 나에게 붙어서 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내가 꿈꿔왔던 것들이 나에게 엄청 가까이 왔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부터 잘 사는 삶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데, 결국에 나는 한 가지에 미쳐서 사는 삶이 나에게 가장 행복을 주고 동시에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더라도 이 삶을 살 거 같다. 그 점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 해도 상관 없고, 일상생활이 공부와 작업으로만 되어 있어도 좋다. 평생 연애 못 한다고 해도 괜찮다. 사과나무로 태어났으면 사과나무로 살아야 하는데 나는 종종 그것들을 못 하다가, 오늘 프랑스어 선생님과 영국영어 선생님 만나고 깨달았다. 나 너무 행복했다.
여전히 너무너무 잘 하고 싶고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런 모든 한계 속에서 잘 사는 게 내가 할 최선인데,
대현오빠가 하리는 언젠간 성공하겠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성공해도 지금과 똑같이 살 거 같다. 이외의 모든 외부적인 것들이 변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면의 길을 따를 거 같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은데, 종종 나도 잘 모르겠는 나 자신은 너무나 큰 짐과 너무나 큰 책임과 너무나 큰 범위와 너무나 큰 열정을
원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너무나 큰 것들을 다 하기 위해서 오늘 하루 한 걸음 걷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게 말도 안 되게 행복하다.
“구를 본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것임인 동시에 당신 자신을 바라보는 겁니다.” 우리는 <우주 먼지입자>를 경험하고, <우주 먼지입자>는 우리를 경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화가 생겨난다. <우주 먼지입자>는 생기 있게 반짝이고, 숨 쉬며 현재를 산다. 진정성이 말하는 게 아니라 듣는 데서, 주장이 아니라 포용에서 시작된다면,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의 진동까지 들으려 애쓰는 예술가의 진상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서구의 옛 철학자들은 예술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을 수동적 존재로 느끼게 하는 예술을, 자신 안의 의도치 않은 낯선 움직임을 도무지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절은 변했다. 엘리아슨의 예술은 가장 진보한 역할을 수행한다. 감각을 자극하고 감정적 내러티브를 깨움으로써 시간, 공간, 사회, 문화 그리고 지구에서 자기 존재를 자각하도록 만든다. 머리로 얻는 지식과 몸으로 얻는 지식을 결합할 때, 모든 개인은 비로소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에이전시’가 된다고, 작가는 믿는다. 좋은 예술은 세계를 보도록 하지만, 더 좋은 예술은 세계가 나를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한다. 미술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작품을 함께 보면서 불안정성을 느끼는 게 비폭력적이고 내향적인 공존의 길이라고, 그러니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보라고 격려한다. “내 전시를 보러 오라고 하지 않고, 내 전시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하던 미술가의 작업 앞에서, 실로 오랜만에 예술로부터 환대받는 기분, 지금 가장 절실한 상태에 닿았다. 요즘 미술은 훌륭한 투자의 수단이지만, 내게 미술은 긍휼의 마음을 내보이면서도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