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고 안정적으로

by hari

학생때는 몰랐다. 나랑 제일 친했던 교수님께서는 내가 뭘 하든 자꾸 테클을 거시고 반대 입장을 취하셨는데, 어느 날 한 번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 보니, 추후에 내가 미술계에서 활동할 때 있을 많은 선택과 실패에 있어서 견뎌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나에게 대우했다고 하셨다.


나는 요즘 많은 걸 포기한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싶지 않아서, 행여나 내가 갖고 싶은 거나 혹은 기회 등이 있다면 그것을 갖지 못해도 괜찮다는 반대의 것들까지도 허용한다. 그리고 가져도 된다는 것 까지도 허용한다. 그러면 완벽한 자유다. 가져도 되고 가지지 않아도 되니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요즘따라 부쩍 내가 견고하고 안정적인 거 같다. 무엇 하나 까탈스럽지 않고 이렇게 잔잔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그럴 수록 혼자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그게 좋다.


엄마랑 거리를 두고 아빠랑 더 친하게 지낸 이후로 내가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다. 수십년에 걸쳐서 엄마한테 시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밉지도 않고 측은하지도 않고 나에게 있어 중요도가 사라져 버리니, 남겨진 건 아빠와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인데, 신기하게도 우리 가문의 성격은 다 똑같아서 성실하고 끈질기다. 한 가지 미쳐버리면 미친 개 처럼 끝까지 파고들고 어디서든 살아남아버리는 심보도 똑같다. 나는 엄마의 의존성에 시달려서 청소년때와 이십대를 약하게 지냈지만 이제 진짜 나로 살고 있는 거 같아서, 그 아팠던 기간동안의 후회와 원망도 없다. 그저 지나가버린 시간일 뿐이다.


여전히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고 거슬리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되는 것들을 매번 흘려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엄마랑 친하게 지냈을 때에는 어떤 사람의 능력이나 외형, 혹은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나 힘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나도 힘이 생기고 싶었고 본받고 싶었다.



그런데 스스로 힘이 생기니 이제 누군가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저 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건 성장을 할 필요가 없거나 멈추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난 매 순간 성장을 원하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 그저 누군가에 의지하거나 의존할 필요 없이 스스로 하고싶다.


어제는 한 가지 실패가 있었다. 슬프기 보다는 왜지? 라는 의문이 더 커서 그것에 대해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뿐, 그 이상의 깊은 의미는 없었다.


요즘들어 주변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본인의 메인 일을 제대로 안 하고 다른 것들에 빠져사는 지인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마음이 아프다.


이번년도는 대인관계가 알아서 정리가 되었는데,

나를 간 보거나 애매하게 구는 남자들을 다 차단해 버렸고,

내가 닮고 싶지 않고 같이 하면 비슷해질 것만 같은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그게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서 본인의 업과는 거리를 두고 당장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멀리한다. 투자로 굳이 따지자면 투기꾼들과도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스타일이라서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닮고싶진 않다.


바로 당장의 성장이나 성공이 아니더라도 나는 의미있고 견고하고 안정적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모험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며 힘이 있고 안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성공이 좋다. 그건 늙어서나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그런 인생을 사는 건 의미있는 삶이 될 거 같아서 나는 보여지는 것 보다 스스로 깊게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아빠에게 고맙다. 요즘에는

가족의 힘을 많이 느끼는 거 같은데, 그게 정말 든든하다.


심심해서 사주도 봤는데 나랑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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