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by hari

이 작업에 대한 소개에 앞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 대한 나의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또한 내가 나의 사진과 글에 대한 해석은 하겠지만, 이 작업들은 개인에 따라 여러 개의 해석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 만약에 내가 시를 해석할 때 내 상황과 내 입장을 그 시에 집어넣어서 감정이입의 방식으로 시를 해석하는 방법과 동일하게 내 작업도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개인이 나의 결과물들을 본인들의 세계에 맞추어 느끼고 해석하기를 원한다.
나는 밀란쿤데라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이 책을 작품의 주제로 잡은 이유는, 이 책은 나의 삶 속에 들어와서 나의 한 부분이 된 만큼 중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서 나는 토마시가 되기도 하고, 테라자가 되기도 하고, 사비나가 되기도 하고, 프란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주변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과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나는 의미부여를 하는 과정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에게 어떠한 가치평가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많이 던졌다. 실제로 나는 한없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기도 한 경험을 하고 살았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나의 주변 사람들, 나아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경험했을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가볍다’ 라는 개념은 ‘어떠한 것에 대하여 깊이 들어가지 않고 표면에서 머무는, 그리고 순간을 중시하는, 해석을 중요시 않고 너무 깊은 감정에 빠지지 않는.’ 것을 뜻하고, ‘무겁다’ 라는 개념은 ‘어떠한 것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빠져 들어가기를 좋아하며 끈질기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그리고 가끔은 너무 깊은 감정에 빠지게 되어 감정적으로 조절이 안 될 때도 있는. 하지만 항상 삶을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나온다. 나는 그 인물들 중에서 ‘토마시, 테라자, 사비나’에게 가장 애착이 간다. 토마시는 가벼움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그는 허무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허무를 끌어 들인다. 그리하여 그 허무는 더욱 커지게 되고 그 빈 공간을 더 많이 채우고자 여러 여자를 만난다. 여기에서 여러 여자를 만나는 것은 정신적인 관계가 아닌 육체적인 관계를 말한다. 육체란 겉으로 보이는 ‘몸’이다. 하지만 정신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람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것을 느끼기도 하고 허무를 느끼기도 한다.
나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것, 즉 정신적인 관계를 느낀 사람이 여럿 있다. 그것이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 앞에서는 나는 무거움으로 대표되는 인물인 ‘테라자’가 된다. 나를 ‘테라자’로 만들어준 k라는 인물은 토마시의 성향을 띄고 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k는 나를 더욱 참을 수 없게 무겁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항상 k와의 만남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인식하려 노력하였다. 결과적으로 k와 나와의 관계는 무거운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정신적인 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행위, 즉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k와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인식하고 기억을 잃지 않게 위하여 순간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은 점이 있다. 그것은 k는 하나의 ‘순간’들을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성인이 된 어떤 개인이 어렸을 때의 사진첩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잠시 회상하며 지나칠 뿐, 그 이미지 하나하나를 해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에 대한 해석을 멈추고자 하였다. 대신 사진으로 그들의 순간, 감정을 담고자 하였다.
나를 테라자로 만든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는데, 편의상 그 사람을 J라고 하겠다. J는 나를 테라자로 만들었지만, 그 사람 또한 테라자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정신’에 집착하고 의미부여를 한다. 자신을 자연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사진을 찍는 도중 발견한 공사장의 유리조각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유리조각을 그녀의 집에 가져갔다. 그녀는 개개인의 세계를 존중하고자 내가 너무 깊게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였을 때, 더 이상 깊게 들어가면 관계가 어긋난다는 것을 나에게 항상 일깨워줬다. 그것을 글로 표현하였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모래알 하나하나까지 다 보일 것 같은 맑은 물은 점점 깊어질수록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너무 깊게 가면 그것이 나인지 또는 바다인지 헷갈려 바다와 하나가 되려 하다가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하지만 그것에 한 번 매료되면 바다 위로 올라갈 구실을 못 찾을 때가 있어 그 곳에서 잠시나마 머무르지만 파도의 마음은 나를 있는 힘껏 수면으로 올려 보낸다.”


여기에서 맑은 물은 인간관계 속에서의 가벼움을 뜻하고 깊은 수심은 인간관계속의 무거움을 뜻한다. 바다에 너무 깊게 들어가는 순간, 즉 너무 무거워지는 순간에는 타인과 나의 관계는 어긋날 수 있다. 그 이유는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지 않은 채 타인과 너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면 나의 주체성이 상실한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성향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 가벼운 것에 치우치지도, 너무 무거운 것에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선에 있어야 한다. J는 항상 내가 그녀와의 관계에서 너무 무거운 것에 치우치고자 할 때 나를 수면으로 올려 보냈다.
나는 가끔 사비나가 된다. 사비나를 짓눌렀던 것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그녀는 프란츠와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으나 자신 때문에 아내와 이혼하여 자신에게 관계를 요구하였던 프란츠를 떠난다. 즉 자신의 가벼움은 프란츠의 무거운 관계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성 관계에 있어서 K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나는 사비나였다. 그러한 가벼움에 짓눌려서 나는 가벼움에 대한 가치평가를 논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단순히 부정적이고 헤픈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가벼움이 너무 과소평가가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움을 부정적으로 가치평가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나는 H를 찍은 뒤 그 날의 순간과 육체적인 순간만을 즐긴 채로 그와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가벼움의 허무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 함께 있던 순간이 즐거웠고, 의미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즐거움의 순간은 나의 사진 안에 담겨서 의미 있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작업에서 내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의 첫 번째 목적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이 작업의 두 번째 목적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표되는 사람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그 날의 감정 혹은 과거의 감정을 회상하며 훗날 이 작업을 보았을 때, 그들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나의 삶에 공존하여 있었다 라는 것이라도 스쳐지나가듯 기억해내기 위한 과정으로 이 작업을 하였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해답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하여 이분법적인 좋고 나쁘다는 가치평가는 어떠한 것에 대한 폐쇄적인 시각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선악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사람들은 선하고 악한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단정 지어 ‘착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항상 무거움과 가벼움을 상황에 따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거움은 그 사람의 내면을 단단하게 해 주고 가벼움은 잡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두통약 같은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볍고 무거운 것은 우위를 가를 수 없이 둘 다 소중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