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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3

by hari
그림1.jpg <화수클럽>



논현으로 가는 버스를 타며 친구 생각을 하였다. 그 아이와 맨 처음 만난 곳은 학교 앞이었는데 그 아이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 아 귀엽다.


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은 혼잣말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나는 그 말이 다 들렸었다. 길에서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알게 되어 몇 년간 인연이 지속된다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조금 우울하기는 했어도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죽고 싶어 하였고 아주 불안정했다. 나에게 자주 전화하여 술을 마시자고 하였고 나는 그 아이와 술을 마실 때마다 정말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아서 얼마간 그 아이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 당시 우리는 너무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아무런 보호 없이 갑자기 낯선 세상에 떨어진 어린 아이 두 명 같이 보였다.


겨울이 지나고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아이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 아이가 많이 변해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이 있어도 서로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술을 마셔도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그 상태로 몇 년을 또 보냈다.


우리는 우리를 볼 때마다 항상 다르다고 하였다. 그 아이의 새카만 머리색과 어두운 피부색과 나의 금발의 머리색과 밝은 피부색부터 시작하여 옷 입는 스타일과 좋아하는 이상형, 몸매, 전공, 남자를 만나는 방식이 전부 다 달랐다. 그 아이는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면 사귀었고 그 사람을 그리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면 지루해 하였고 첫 눈에 반하면 바로 사귀자고 하였다. 그 아이는 사귀기 전에 생각을 하였고 나는 사귄 다음에 생각을 하였다. 그 아이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항상 누군가들을 좋아하곤 하였다.


우리는 거의 비슷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더라도 우리의 너무 다른 이미지 덕분에 립스틱 색마저 다른 색같이 느껴졌다.


밖에서는 애매한 속도로 비가 내렸고 애매한 온도가 나를 덮었다. 너무 추워서 히터를 틀었지만 그래도 으슬으슬 추웠다. 사람들은 얼굴 없이 지나가고 있었고 과식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답답하여 계속 한숨을 쉬어도 답답하였고 생각을 멈추고 싶어 책을 읽어도 생각이 계속 떠올랐고 잠을 자려 해도 잠 속에서도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했지만 그저 나른한 상태로 잔잔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그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하기 전, 그 아이는 학교 오전 수업을 째고 친구와 전기장판 위에서 누워 있으면서 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단다.


- 불에 타서 죽고 싶다. 근데 내 친구는 물에 빠져 죽고 싶다고 할 걸?

옆에 있는 친구는


- 그런 사람이 어딨냐.


라고 하였고 그 때 마침 나에게 전화가 왔단다. 그 아이는 내 전화를 받고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 너는 물에 빠져 죽을 거냐, 불에 타서 죽을 거냐?


나는 당연히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 물!


이라고 하였다. 그 아이는


- 너는 당연히 그 말을 할 줄 알았다.


라고 하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죽어서 귀신이 되면 누구를 지켜줄 것이냐고 물었고 그 아이는 자신의 오빠라고 하였다. 이유를 묻자 자신의 오빠가 행복하면 부모님이 행복하실 거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버지를 지켜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아이가 내게 이유를 묻자 나는 아버지는 행복해도 티를 안 내고 불행해도 티를 안 내니까. 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죽든 살든 내가 어머니의 곁에 없으면 항상 불행해 하고 있을거니까. 라고 말하였다.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지만 느끼면 이해가 되는 문장이었다.


나는 겨울의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 하였고 그 아이는 여름의 불에 타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겨울의 물에 빠져 죽으면 춥지 않냐는 그 아이의 질문에 나는 일부러 춥기 위하여 겨울의 물에서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아이는 물에 빠져 죽으면 고통스러울 것 같고 불에 타서 죽으면 아플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그럼 수면제를 먹은 뒤 물에 빠지고 불에 타자고 하였다. 일단 그 아이가 먼저 수면제를 먹은 다음에 그 아이가 잠에 들면 내가 그 아이를 불 속에 던지고 그 다음 내가 바다의 부두에 가서 아슬아슬한 포즈로 난간에 기대 있다가 수면제를 먹고 자연스레 빠져 죽겠다고 하였다. 그 아이는 이번년도 여름에 먼저 불에 타서 죽고 나는 이번년도의 겨울에 물에 빠져 죽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 되어서 기분이 좋으면 죽지 않겠다고 하였고 그 아이는 그러면 자신이 귀신이 된 뒤 저주를 걸겠다고 하였다. 나는,


- 너는 오빠는 지켜줄 거면서 나한테는 저주할거냐.


라고 말하였다. 엉뚱한 이야기를 몇 분 동안 하였다.


그 아이가 맨 처음 나에게 물에서 빠져 죽을 거냐, 불에 타 죽을 거냐 물었을 때, 자신은 당연히 불이고 나는 당연히 물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만약 남들에게 물었더라면 남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을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그 말에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 누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안 돼. 왜냐하면 우리는 위험하거든.


이라고 하였다. 어제도 과실에서 오목을 두다가 어떤 오빠가 계속 오목에서 졌었는데 그 오빠가


- 아 죽고 싶다.


라고 하였을 때, 나는


- 그럼 나랑 같이 죽을래?


라고 말하였다. 옆에 있는 根은 그 오빠에게 나에게 죽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하였다. 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 말을 들을 터이니. 웃긴 것 반 슬픈 것 반의 감정이 왔다. 나는 왜 살고 싶으면서도 죽고 싶을까?


나는 그 친구에게 ‘죽지 못하는 자들은 가라’ 라고 말하였고 그 친구는 내가 사이비 같다고 하였다. 나는 껄껄껄 웃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클럽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것은 화수 클럽이다.


火水 클럽.


며칠 전 아쿠아리움에 갔을 때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해파리였는데 동일한 모양의 해파리들이 푸른 조명의 어장 속에, 붉은 조명의 어장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푸른 어장의 해파리들을 더 좋아하였고 그 아이는 붉은 어장 속 해파리들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푸른색의 어장이 나와 더 잘 어울렸고 붉은색의 어장이 그 아이와 더 잘 어울렸다. 그 어장들은 바로 옆에 붙어 있었고 해파리들은 나비처럼 물속에서 날아다녔다. 우리는 슬픈 동시에 기뻤고 우울한 동시에 행복했다. 우리는 아주 자주 술에 취했을 때 죽음에 가장 가까워진 우리를 떠올리곤 하였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슬퍼하기보다는 재미있어하면서도 그저 가볍지도 않았다.


우리의 죽음에 관한 농담들은 가벼우면서도 아주 무겁다. 그 무게는 우리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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