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by hari

운명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무차별적이고 가혹하다는 생각에 나는 운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라는 것은 짓밟혀지며 보이지도 않고 그저 느낌으로만 가늠되어질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하여 꼭두각시처럼 조종되어지는 것이 운명 같다는 생각에 그랬다.


하지만 때때로 사랑스러운 운명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한 운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에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작용했으며 얼마나 쓸데없는 행위를 했으며 얼마나 의미 있는 감정을 소요했을까.


점성이 아주 약한 우연이라는 것이 뭉텅이로 모여져 사람과 사람간의 혹은 개인과 세계가 결합되는 것이 아주 경이로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 혹은 나에게 남겨지거나 나에게 처해진 것들이 초반에는 얼마나 점성이 약한 것으로 이루어졌을 까, 라는 생각에 가끔 그것들의 시작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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