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현재의 나는 나 스스로가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택 자체가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하며 계속하여 실행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물으셨다. "그럼 이전에는 선택을 하지 않았니?"
나는 이것이 자발적(혹은 능동적)선택과 수동적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선택을 하기 전, 자기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무의식 속에서 잠자고 있는 자신을 깨우며 물어본다. "너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말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대답한다. 이것이 바로 자발적 선택이다.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선택을 하기 전, 외부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자신은 영어공부보다 프랑스어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더 보편적이고 효율적일 것 같아 영어공부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자발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지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발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 많아질 수록, 동조 현상이 줄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되 비판적으로 들으며 기분에 따라 상대의 의견을 따르는 척을 하지 않는 사회로 변하고, 자기 자신의 이익대로 대처하는 에고이스트가 줄어들며 사랑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좋은대로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자발적 선택을 할 경우,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타인의 기대에 엇나가는 생각이나 행위를 하면 종종 사람들은 그것을 '틀렸다'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실패 자체를 정말 실패 그 자체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행위를 통하여, 어떠한 일이나 대상 등에 쓸모를 얻는다.'가 나의 의견이다. 나는 그래서 일부러 계속하여 시도를 하곤 한다. 그림 같은 경우에도, 나는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를 명확하게 계산하고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아주 멀고도 모호한, 추상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린 다음 행위를 통하여 바로 시도한다. 그리고 다 끝난 뒤 나는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를 깨닫는다. 계획 없이 저질러버리면 쓸데없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여겨지곤 하지만 나는 그 행위 자체가 쓸모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은 바다와 같아서 어느날 갑자기 어떠한 일이 닥칠 지 모르므로, 그것을 맞닥뜨리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므로. 또한 그것을 대처할 것도 자기 자신이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