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길과 본인의 길이, 사람들의 길이, 그리고 또 세상의 길이 다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아주 미세한 먼지라도 되는 듯 나는 그것을 잊고선, 고정관념을 꾹꾹 눌러담아서 살았었다. 모든 것을 상상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지구이다.
길은 이어져서 길이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실은 죽고 나서도 우리는 계속하여 존재하는 영혼들이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영혼과 순간은 영원하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구별에 온 이유이고 목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하는가?
내면을 생각 안 하고,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기 바쁘지 않은가?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마치 이것이 세상의 진리인 것 마냥 네모상자안에서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계를 만드는 건 본인 스스로의 몫이고,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본인 스스로의 몫이다.
언어라는 것은 실재를 다 담지 못하여, 내가 한계가 없다는 것은 극단적인 뜻을 말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을 정도'와 본인의 마음과 길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으면서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다. 10분이라는 개념 속에는 아주 미세하게 더 추가되는 시간이 있다. '시간 단위'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약간의 남는 시간들끼리 축적되어 아주 많은 양의 그저 흘러보내는 시간들이 쌓인다. 하지만 시간단위로 살지 않고, 내면이 원하는 대로 산다면 심리적인 시간은 필요가 없고 그것이 한계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시간의 철저한 숫자적인 계산이 아닌, 가슴이 느끼는 리듬과 박자대로 순간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한계의 개념 중 하나이다.
누군가와 타협할 때에도 그렇다. 어떠한 원칙 앞에서 그것이 벽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 벽 앞에 부드럽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벽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것은 벽이 아니라, 그저 심리적으로 본인의 자신감 부족이라는 것이 탄로난다. 용기와 자신감이 없어, 외부의 벽이 있다는 변명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꼭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계속하여 나 스스로의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함께 만나서 서로를 느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다투거나 싸우거나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다 연결되어 있고 하나이다. 싸운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우리는 서로 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우리 각자는 서로의 내면을 비추어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상대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본인 스스로의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의식과 신뢰가 뿌리내리면 본인 스스로와 싸울 일도, 계산하고 따질 일도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이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외부로 에너지가 쏠려서 남과 비교하고, 그곳에서 본인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착각으로 오히려 더욱 공허한 것들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감정들을 덮기 시작하는 것이다.
힘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존재에게 다 있다. 그것이 바로 우주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 이자 우리 존재 그 자체이다. 행복이 본인 앞에 아주 가깝게 놓여있는데도 그것을 받아먹지 못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다들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말로 산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