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기 놀이

by hari


관악산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 뒤, 몇 분간 몇 걸음의 발자국으로 낙엽을 서걱서걱 밟다보면 또 다른 길이 나온다. 그리고 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튼튼하고 꼿꼿하게 서 있고, 다른 그루는 힘없이 튼튼한 나무에 기대고 있다.


나무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힘없는 나무는 튼튼한 나무에 기대다가 썩어버렸다. 뇌에서 노란색 전율을 보낸다.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다.


나무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친구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산에는 길이 있다. 낙엽 밟는 길이 있고, 계단을 높게 오르는 길이 있고, 두 갈래의 갈림길이 있고, 가까운 듯 먼, 다른 길이 나란히 있다.


우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서로의 길을 걷는다.


슬픔이건 행복이건

축복이건 기쁨이건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간격이 있다.

홀로

그리고 나란히,

이전에 사람들이 지나간 길고 넓은 길을 걷는다.

슬픔은 뇌에서 보내는 신호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뇌와 관자놀이 사이에서 노란색 전율이 흐른다.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다. 지나가는 날씨와도 비슷한 일시적인 것이다.


노란색의 동그란 기호들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슬픔에 찬 기운이 뇌속을 파고들고, 나는 그저 그것을 바라본다. 슬픔은 악보에서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리듬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전체가 아니다. 때때로 지나간 것들에 대한 얇은 깨달음일 뿐이다. 슬픔의 얇고 흐릿한 층이 지나갈 때, 우리는 다시 맑아진다.


사람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나무에도 일정한 간격이 있다. 길에는 일정한 흔적이 있고, 우리는 이전에 사람들이 밟은 길을, 우리의 발자국과 리듬으로 밟아간다.


기억이란 머리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같은 것이다. 그 바람 사이에는 슬픔이라는 장식이 있다. 우리의 존재는 가슴과 배의 어느 지점에 보이지 않게 열려 있다.


길을 걷는다.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들이 밟고 지나간 길을 걷는다. 나는 그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지점을 바라보며, 간격을 두며 걸어간다. 나는 그가 아니고, 그는 내가 아니다.


길을 걷는다. 나는 그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다른 지점을 바라보며, 간격이 멀어지며 걸어간다. 나는 그거 아니고, 그는 내가 아니다.

갈림길 앞에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새처럼, 그저 그렇게 날아간다.


길을 걷는다. 나는 그 사람과 다른 방향으로, 다른 지점을 바라보며, 간격을 신경쓰지 않으며 걸어간다.


언젠간 어떠한 필연으로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또 다시 만나고, 마주보거나 혹은 회피하거나, 어떠한 눈빛을 교환하며 다시 걷는다.


길을 걷는다. 또 다시 서로의 길을 걷는다.


사람마다 간격이 있다.


길은 이어지고 이어져있다.


길을 걷다가 우리는 만났고, 길을 걷다가 우리는 다른 길로 떠났다.


그것이 전부다.


감정은 우리의 머리를 통과하는 가벼운 바람과 같은 것이고,


우리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혼으로 담겨있다.


길찾기 놀이가 끝이 났을 때 비로소,

우리 혼은 길을 떠나

우리의 길찾기 놀이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적이었다는 걸

가슴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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