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춤을

by hari

넷플릭스에서 <일어나 춤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어머니와 아내를 잃은 엠마와 새아버지 존에 대한 영화인데, 그 둘의 입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서 좋았다.

사람이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닐 때에는 항상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은 슬픔, 그리고 이곳저곳 치이며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엠마. 결국 그녀는 친아버지에게 가지만, 그곳마저도 자신의 퀘렌시아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존에게 돌아간다.


서로의 빈자리를 느끼며 진정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공간을 넓히며 진심으로 다가가는 이 부녀를 통하여 가족간의 사랑, 나아가 인간의 사랑을 느꼈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이든 사랑이라는 고귀함 앞에서는 누구나 한없이 여리고 순수한 아이이다.


실은 엠마의 입장과 온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녀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느꼈고, 제주도에 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일 년 내내 다 잘 될거라는 소망만을 믿고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래가 보이질 않았다. 예상조차 하질 않았다. 너무 급하게 달렸는지, 내가 생각한 미래의 그 지점에서 멈추었을 때, 그것 또한 순간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렸을까? 후회는 없지만 그 때부터 다시 차차 조정을 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학생이었던 신분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달려온 탓이었을까, 몸과 마음에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밤마다 풀리지 않는 긴장으로 무거운 머리를 지니고 고통받았다. 일 년 내내 항상 행복했는데, 그 때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으나, 체한 속에 음식물을 꾸역꾸역 집어 넣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좋은 기회를 접고 나는 또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보고싶었다.


틱낫한 스님의 책의 구절 중에서, "감기에 걸렸는데 찬물로 샤워하지 말라." 라는 내용을 읽자마자 나는 제주도로 떠나기로 바로 마음먹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왔다. 지금은 제주도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마음 편히 이곳에 있다. 여기에서 깨달은 점은 너무나 많다. 일단 내가 휴식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일 중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그것이 조바심 때문에도 있었지만 바쁘게 살면서 그것에 맞추어 굉장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있어왔었다. 그렇기에 후회 없다. 하지만 막상 자연에 와서 쉬려고 하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자꾸만 이곳저곳으로 튀려고 했다.

그러다가 드로잉을 계속하여 하고 있는 중이다. 드로잉을 하다보면 온전히 내 존재가 자유롭다고 느껴진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걸 느낀다. 특히나 식물이나 자연 등을 관찰하면서 그곳에서 나오는 은은한 행복감이 좋다. 섬세한 색과 섬세한 그 선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범하고 느린 삶, 가족에 대한 소중함, 임기응변이라는 걸 배우고 있다. 복잡한 서울에서는 달리, 이곳은 텅 비어버린 캔버스에 아주 여린 색을 칠한 느낌이다. 비어있다. 느리다. 여유롭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또 다르다. 위기가 오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간다. 스트레스가 없다. 그리고 가족들의 화목함이 좋게 다가온다. 너무 따스하다.

물론 고독하고 외롭다. 외롭다는 표현보다는 고독함이 더 잘 어울린다. 어느 하루는, 너무 고독해서 고통스러울 정도였는데, 그 이후로는 이 고독 또한 꽤 익숙해져서 가끔은 따스한 보일러를 틀어놓은 바닥에 누어서 눈을 감고 시계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 일도 없다. 가끔씩 조급한 건 내 마음일 뿐.


다행인 건, 내 속도가 꽤 많이 느려진 것 같다. 그래도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건 있지만 말이다.


제주에 잘 온 것 같다. 서울도 그립지만.

사실 정말 앞이 안 보여서 내가 직접 등불을 켜고선 걸어가야 하는 실상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자꾸만 걱정할 필요 없이 안심하라고 나 스스로를 토닥인다. 그리고 실로 그러하리라 믿는다. 언제나 지금 현재만 살면 내 존재는 빛이 나니까.

먼 훗날의 일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기를.


오늘 사장님이 주신 따스한 귤 주스와 사모님이 주신 라면 세 개 덕에 참 따스한 하루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부족할 지 모르지만, 현재를 바라보면 즐기고 행복하기에 아주 풍족한 조건에서 나는 존재한다. 감사하다.


박하리 <관찰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