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 우리는 파랗게 파랗게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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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멋쩍은 그 사람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알려준 노래를 커다랗게 틀고 있었으며 나는 그것을 무시하듯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를 관조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항상 옥상에서 바라보았던 흰색 건물이 보였다. 처음 옥상에 갔을 때 저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걸리적거리는 카메라를 목에 매고 무섭다며 낑낑거리며 옥상에 힘겹게 올라가곤 하였다. 내가 그 사람에게 욕을 하며 잠시 떠나갔을 때 그가 꽤 좋아했던 사람의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흰 배경이 있었다. 한동안 그를 내면으로 바라보았고 나 자신을 다스렸지만 나는 나를 무참히 내던지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자아를 내 밖으로 내던질 수 없었기에 불안했다.

누군가에게 말하곤 하였다. 나는 암시적인 관계가 좋다. 넌지시 던지는 관계는 모호하고 모호한 안개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으며 타인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언젠간 내 메모들을 합쳐보면 관계에 대한 흐름과 실마리들이 명확히 나오겠지.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적곤 하였으니까. 그들이 좋아서 적는 것도 있었지만 적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도 있었고 순간을 변형하여 기억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것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나는 수년간 그를 모호한 거리에서 상상 속으로 그를 편집하였고 가끔은 이상적인 편집을, 가끔은 악의적인 편집을, 가끔은 허영심 가득한 편집을 하곤 하였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상상들이었다. 아주 많은 편집을 하다 보니 그에 대한 실마리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였고 아주 명확하지만 진행 중인 흐름이 보였다. 그는 나에게 말하곤 하였다.

-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잘 안다. 그를 잘 알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오롯이 그에 대한 마음의 평온 말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나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또한 나는 말하였다. 나 또한 그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우리를 매달고 있는 끈이 아주 불안하게 한 가닥 남겨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 끈. 그의 입에서 끈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아주 감격스러웠다. 나는 항상 그 질긴 끈을 끊고자 하였고 그는 내게 너무 단호하게 구는 것 아니냐 말하였다. 나는 항상 그를 기다렸고 그는 기다리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런 계산 없이 그의 볼을 어루만지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였고 나는 우리의 끈에는 관심을 끊었다. 가이아의 계단 네 칸 위에 그가 서 있었고 나는 감상적인 상상에 빠지곤 하였다. 나는 아주 재빨리 편의점에 다녀왔고 그에게 친구네 집에 들렀다고 거짓말을 치곤 하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스럽다고 하였던 차분한 분홍색의 티셔츠와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그러기에 아마 꽤 따뜻한 날씨였나 보다.

그의 얼굴은 아주 얼큰하게 빨개져 있었다.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주 찰나의 나날 동안 그는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곤 하였다. 내가 평상시 전혀 느끼지 못하였던 그런 눈빛 말이다. 예뻐서 나를 바라보는 것 말고 정말 나의 영혼을 바라보는 듯 한 눈빛이었기에 그 눈빛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다.

그때의 나날은 그의 불안의 시기였다. 나는 항상 우울할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하곤 하였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통화를 하곤 하였다. 그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오래 통화를 하는 건 처음이라 하곤 하였다. 나는 그것이 거짓인 줄 알았지만 아마 진실인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흐름을 타며 서로 같은 강의 마주 편에 서 있었다. 시간의 강은 흘러가고 있었으며 우리는 천천히, 가끔은 빠르게 서로의 존재를 암시적으로만 알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그가 나에게 소리치며 잠시 멈춰보라 이야기하였고 나는 왜? 하고 대답하곤 하였다. 그럴 때는 아마 내가 다른 이를 사랑하였을 때였다. 나는 다른 이를 사랑할 때 또한 그를 품고 있었지만 굳이 멈추어서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저 내면으로 그를 상상하고 있는 것만으로 따뜻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멈추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항상 내가 그에게 끌려 차가운 강을 건너곤 하였는데 어느 날 그가 강을 건너고 있는 이미지가 보였다. 물에 젖어 있었으며, 차가 워보이는 동시에 아주 파리한 이미지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김없이 검정 색 옷을 입고 있었고 시들해진 이미지 덕분에 여러 무리 속에서도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에게 말하였다.

- 우울하다.

그 문장에 꼼짝없이 잡혀 있었다. 우울이라니. 지금으로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때에는 그 문장에, 그의 눈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에 대한 욕망이 풀려버렸다. 꽉 놓고 있는 그의 손을 놓아주었고 다시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최초였고 며칠 동안 울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 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말할 때마다 씰룩거리지 않는 내 입과 눈이 보였다. 가끔 허영심 가득한 언어를 내뱉으면 눈과 입이 씰룩거리곤 하였다.

나는 모호함 속에서 우리를 관조하고 있다. 누군가가 모르는 그에 대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자랑할 거리가 아니다.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는 그렇다. 아마도 그럴 것이고 아마도 맞을 것이다. 라며 말이다.

내가 사랑하였던 사람들 혹은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과연 그만큼 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그에게 했던 행동만큼 그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소중한 만큼 그들에게 내가 소중하게 대해줄 수 있을까?

다시 감상적인 상상에 빠졌고 밝은 형광등의 가이아 속에서 있었던 우리가 찰나로 깜빡였으며 모퉁이에 누워있던 그가 보였다. 아주 먼 순간까지 선명하였다. 나는 그를 쓰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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