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E

20

by hari

모든 감정들이 내게로 왔고 묘사할 수 없는 혼돈과 결부된 행복 또한 오고 있었다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는 내게 그것은 아무 걸로도 비유할 수 없다 말하였고 나는 그저 끄덕였다 그것이 어떠한 느낌인지 단정하거나 단언하고 싶지 않았고 위로하고 싶지 않았고 판단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저 담백하게 응 아니, 하고 싶었다

어두운 밤공기 맡으며

이전에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그와 찍은 사진을 상상 속에서 어떠한 화살표가 가리켰다

나는 그 화살표 보고 그만 오라고 말하였다 아직은 아니다 그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몸서리난다

내 손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흐지부지했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전에 놓치기 싫은 그 감정을 내던지고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게 살며시 틈을 갈라놓았다

언제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간 강요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손을 움켜쥐었고 그럴수록 감정은 저 멀리멀리 떠나가려 하였다

아무런 기척 없이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끊임없는 실을 상상하였고 제멋대로 내 기억을 왜곡시키곤 하였다 아주 슬프거나 아주 기쁘거나 극을 오가는 그런 상상 말이다

가끔은 굉장히 많은 구역질들을 내 몸 안에서 꺼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 상상을 하였고

나는 그럴 때마다 토를 하지 못하여 누군가를 찾곤 하였다

이전의 가이아를 자주 드나들던 친구를 만났고

밤공기를 맡던 가이아의 옥상을 올라가지 못한 채 그저

내가 좋아하던 세탁소의 스팀 냄새를 떠올리며 그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곤 하였다

그녀를 올려보며

누군가가 나를 꾹꾹 눌러 담는 것 같다 말하였다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그녀는 나를 안으며

감정은 아무 잘못이 없다 감정은 아무 잘못이 없다 말하였고

하루 동안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하며 나를 달래곤 하였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다 하였고

나는 그저 사랑을 주고 싶다 하였다

우리를 얽어놓은 틀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정작 그 틀은 아무도 끼워 맞출 수 없게 만든 정교한 틀이었다


IMG_6750.JPG


매거진의 이전글두 명의 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