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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따스한 차를 마시고 감기가 걸릴까 봐 머리를 단단히 감싸고 벽화를 그렸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부탁하신 건데, 춥지만 재미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배우고 새롭게 깨닫는 게 참 많아서 감사하다. 문득문득 사장님이 스치며 말하는 말씀이 마음속에 꽂힌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 힘들겠어?,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안 되지." 등등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적인 문제,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그 관계에 의하여 상처 받는다. 스스로를 찌르지 않고는 상대를 찌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로 자기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고통받아야 할까?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 이해관계가 우선이 아닌, 진심으로 먼저 다가가고 자신에게 생길 손해에 대하여 우선시하여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 겉으로 보았을 때 손해여도 언젠간 진심이라는 마음이 그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진심이 담긴 행동을 하면 이익과 손해에 대하여도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진심, 나는 진심이 좋다. 도대체 진심이 무엇이야! 라며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때도 있었지만, 간단히 말하면 진심은 진심이다. 언어나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거랄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기심과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심일 것이다.
누구나 다 진심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를 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과거의 상처에 대한 짐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그들을 악해 보이는 못된 사람처럼 내비치게 할 뿐이다. 사람을 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욕하면 자기 자신의 마음도 아프다.
나는 틱낫한 스님께서 알려주신 명상법이 참 좋다. 그것은 상처를 받은 사람과 직면할 때, 그리고 상처를 받은 자신과 직면할 때 좋은 방식이다.
상대방의 6살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나의 6살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6살의 아이가 있다.
나는 우리 아버지의 6살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나의 6살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 받은 상처와 아버지가 받은 상처를 상상했다. 그리고 서로 껴안았다.
누구나 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것은 어렸을 때 받은 상처에 대한 결핍일 수도 있다. 그것을 머리로 이해가 불가한 상황이더라도 마음으로 상상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 상대에 대한 용서와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 대한 용서, 그리고 치유를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의 문 한 개를 더 여는 과정이다.
그리고 오늘 또 내가 남자들에게 준, 그리고 남자들에게 받은 상처를 상상했다. 내 결핍감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준 상처들, 그리고 스스로 가시가 되어가면서까지 매력적이고 날이 선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들을 상상했다. 너무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나 또한 너무 많이 아팠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아팠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나와 그들 사이에 진심이 있기에, 내가 그들에게 가시가 되어 상처를 주더라도 그들은 내 가시를 하나씩 뽑거나 혹은 내 가시에 찔리더라도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참 고맙다. 여리고도 아픈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약간의 고통을 지니면서도 행복하다. 완전한 고통을 끝내고자 모든 문제를 해결해버리려고 하면, 그 문제에 집중하여 그 문제 자체에 동화되어버려 오히려 행복을 잃기 쉽다. 틱낫한 스님은 붓다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에게는 약간의 고통이 필요하다. 마치 정원의 꽃이 활짝 피게 하려면 약간의 지저분한 낙엽이 필요한 것처럼."
이 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것이다. 오늘도 제주도 유람 위드 북스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곳은 장소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곳이다. 파란색 지붕의 데미안이 보이는 차창에 앉아서 고양이 람이를 쓰다듬으며 따스한 햇빛을 만끽하면서 조금은 나른한 기분에 살짝 잠이 드는 그 행복감, 그리고 그곳에 있는 본질적인 책들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오늘은 <친절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으며 정말 행복했다. 진심과 친절에 대하여 조지 손더스가 쓴 책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느껴야 할 마음가짐들을 적어 놓은 책이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오늘도 서비스로 귤차를 사장님께 받았다. 그것이 귤인지 아니면 오렌지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엄청나게 따스하고 맛있다.
붕어빵을 사들고 게스트하우스 식구들에게 나누어주려다가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빨리 버스를 탔다. 창밖에서 비추는 햇빛에 사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느꼈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우체국에 가서 현승 씨와 현지 우편을 부쳤다. 현승 씨가 서울에서 제주로 편지를 보냈을 때, 그 편지가 왔을 때 너무나 기뻐서 뛰쳐나가서 편지를 받았다. 사람은 참 단순한 것에 행복해한다. 그 마음이 너무 좋다.
그리고 터벅터벅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내가 최근에 마음이 가는 한 사람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여기고 내 마음에 충실해야겠다.
게스트 하우스에 와서 그림을 그리다가 짧게 영화를 봤다. 마이 걸이라는 영화인데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직 앞부분 정도만 보아서 내일 아침에 또다시 봐야겠다. 보면서 혼자 낄낄 웃었다.
오늘도 참 감사한 게 많은 날이다. 물론 고통은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그대로 직면하고 좋고 감사한 것들을 상기시키고 또다시 그 기억들조차 집착 없이 바람에 날려버리는 순간순간이 진행되다 보면 더욱더 찬란한 순간들이 탄생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순간은 언제나 항상, 경쟁 없이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