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댄서>

God put a smile upone your face

by hari

*어떠한 상업적인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며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져 있고 스포가 있는 글입니다.



인생의 목표란 무엇일까? 꼭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선택인 것일까? 그것은 개인에 따라 달려있지만 종종 인생의 목표에 타인을 넣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찌 보면 인생의 목표들(예를 들어 돈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등에 관한 여러 가지의 것들)의 가장 근본적인 것까지 내려갔을 때 타인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사회 속에서 생활한다.

가족 말이다. 우리가 개개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가족이라는 개념은 개인들이 모여 있는 기본적인 복수의 개념임과 동시에 가장 마지막 순위에 있을 수도, 우선순위에 있을 수도, 가장 증오하며 가장 사랑하는 개념일 수도 있는 아주 모순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가장 미우면서 가장 아프고 가장 미안한 존재이다.

나는 부단히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했던 것 같다. 정말 혼자가 되면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끈끈하게 젤리처럼 붙어져 있었던 가족에서 떼어져 나와서 보이지 않는 관계라는 것에서 떼어져 나왔지만 그만큼 미안함이 더 커졌기에 그것을 잊어가며 살아가려 하고 있다. 어떠한 죄책감과 죄의식도 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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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 속에서 영화 <댄서>를 보게 되었다. 휴일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조조영화로 보러 갔었다. 상영한 지 꽤 오래 되어 포스터는 없었다. 아쉬웠다.(후에 포스터를 많이 얻었을 때 정말 행복했었다. 하루의 일과 중 포스터를 많이 얻었던 것이 가장 행복했던 일과였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된 영화였는데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 보았기에 처음 세르게이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연기를 못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르게이는 카메라에다가 직접대고 자신이 먹는 약(아마 마약 종류였을 것이다)을 설명하였고 나는 그러한 행위자체가 어색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춤을 추는 신이 나왔다. 그 춤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위하여 아무리 배우가 오랜 기간 동안 무용을 배우더라도, 혹은 대신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이라도 이정도의 힘을 쏟아 부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가 현재까지의 살아왔던 과정,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세르게이 본인의 인터뷰로 진행이 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하여 가장 애착이 가는 이유는 세르게이가 독립된 존재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연약한 존재로 느껴졌다. 그의 감정에 동화될 것 같았다.

그는 어렸을 때 기계체조를 하다가 발레로 전공을 바꾸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그는 말한다. 자신은 가족을 위하여 춤을 추어 춤을 포기하기까지의 지경에 다다랐지만 춤을 추는 이유가 꼭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 이후 그는 자유를 만끽한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는 자유 말이다.

그는 가족과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으며 그들의 곁에 머물고 싶기에 춤을 추었다. 하지만 그가 성장해 나갈수록, 그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더욱 더 멀어졌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까지 하였다. 그 때부터 그는 방황하기 시작하였고 인생의 목표를 잃었다. 그는 춤 출 이유를 잃었다(자신이 춤을 춘다고 하여도 가족을 얻는 것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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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간 부분에 그가 장발을 하고 수염을 기른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그는 마치 짐승 같았다. 공연 중간에 쉬는 타임에 헥헥거리며 앉아 있는데 보람과 즐거움을 잊은 피곤하고 파괴적인 짐승같이 보였다. 그는 굉장히 신경질 적이었고 마지못하여 춤을 추는 사람 같이 보였다. 공연을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창을 맞아 죽는 장면을 보며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공연을 하며 죽을 때 그는 정말로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공연을 했을까? 혹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 혹은 어떠한 확신 또한 없었을까? 비참했을까? 지루했을까? 피곤하고 괴로웠을까? 그는 너무 많이 지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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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다음의 장면이었다. 그가 두 개의 칼을 쥐고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뒤로 젖히는 장면이었는데 그 영상과 세르게이의 목소리가 편집된 장면이었다. 세르게이는 말했다.

“제발 내가 다쳐서 발레를 그만두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이다. 간절해 보였다.

마치 우울증 환자가 아주 생생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을 알기에 죽고 싶다는 힘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더욱 더 아픈 장면이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현실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차라리 죽게 되거나 현실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는 발레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다. 이십대 후반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말이다. 그는 춤을 추는 목표를 잃었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를 설정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안무를 맡긴 뒤 유명한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에게 영상을 맡았다. ‘Take Me to Church’라는 곡을 넣은 영상이었다. 그는 이것이 뮤직비디오처럼 촬영되지 않기를 원했다. 음악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몸짓과 영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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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시작되고 처음 장면이 좋았다. 오른 손을 뻗어 천국을 맛본 뒤 힘없이 죽는 그의 장면 말이다. 그의 동작은 완벽했다. 여러 모순이 같이 있는 것 같아 희한했다. 아주 생동감 있으면서도 힘없어 보였다. 그 힘없는 행동에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아주 높게 날아올랐지만 완벽한 착지를 했다. 그렇다 하여 틀에 맞는 완벽하고 딱딱한 몸짓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기에 완벽이라고 부르고 싶다. 감정과 표현, 점프와 착지, 창작과 모방이 다 들어가 있는 그를 완벽한 무용수라고 부르고 싶다. 발레를 보지만 발레가 아닌 개인 창작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사실 내가 발레를 잘 모르긴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세르게이의 친구의 인터뷰를 보면, 그 친구는 세르게이가 한 작품을 춤출 때 매번 다르게 춘다고 하였다. 세르게이 또한 발레에는 지켜야 하는 규칙과 규율이 있지만 자신은 그것을 많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느끼는 대로 춘다고 하였다.).

그는 이 장면을 찍으며 9시간동안 울었다고 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노래가 들리는 순간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과연 자신이 평생 한 발레를 그만 두어도 되는지 회의가 왔다고 하였다. 그는 이 장면을 찍으며 자신이 춤을 추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이 가벼워졌다고 하였다. 자신은 정말로 춤을 사랑했고 그 이후로 돈을 받지 않고 혹은 다른 곳에 기부하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영화가 끝이 나고 그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가 ‘Take Me to Church’를 영화에서 췄을 때에는 많은 감정과 많은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내가 유튜브에서 그 이후에 그가 Take Me to Church를 춘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힘을 많이 뺐다. 처음 그 공연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가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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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많이 정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얻었다. 분명 나와 그의 상황이 꽤 다르게 처해있지만 공통적인 감정을 느꼈기에 그런가?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무너지지 않고 꼿꼿하게 땅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그의 강박을 내가 느끼며 살아서 그런 것인가?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처럼 다가왔고 그가 예속에서 벗어났을 때 나 또한 생각의 예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 즐겁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어떠한 것을 부정한다거나 긍정하는 나약한 행위 말고 행복하지 않아도, 혹은 불행하지 않아도 그저 즐겁게, 즐겁지 않아도 그저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즐겁다.

인생에 있어서 진득한 목표가 없는 삶. 나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진득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가 놓아주면 미래와 과거가 나에게서 날아간다. 자유이고 해방이다. 다음 날 죽어도 후회가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과거가 쌓이고 미래의 줄이 보인다.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내 생각 속으로 집어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억지로’ 피하고 싶지도 않지만 ‘굳이’ 먼 미래와 예속적인 삶을 내 생각에 넣어두고 싶지 않다.

자유라고 하여 아무런 통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지켜야 하는 선이 많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지키는 것이고 그 선이라는 것은 아주 유동적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사건에 따라서, 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생각의 무게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즐거움의 양과 어느 것에 도달할지 혹은 생각하지 않을지 또한 나 자신이 선택할 일이다. 또한 자유를 추구하며 자유라는 단어를 많이 쓸수록 자유에 얽매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나를 풀어주고 싶다. 그렇다 하여 내가 내 인생을 게으르게 보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배치해 놓은 가구들이 색이 맞아 정돈된 것 같이 보이듯(난잡해 보이는 것 사이로 정돈된 결처럼) 나 또한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다. 그러한 생각의 시작점으로서 이 영화는 나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sergeipolunin.balletdancer 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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