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욕이 거의 없다. 솔직히 소비하면서 얻는 행복감이 별로 크진 않다. 소유욕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소비라는 것 또한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걸 느낀다. 하지만 소비라는 건 생계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란 걸 안다. 그리고 이 습관 또한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고착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 또한 대단히 크게 느낀다. 그것이 고통을 느끼는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백을 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한 고통을 받았다. 다름아닌 그 고통은 소비에 대한 것, 물질, 화, 불안, 분노, 피해의식 등이었다.
이것은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타고나게 예민했던 나는 엄마와 아빠의 그러한 습관들을 스폰지마냥 다 흡수하여 대단히 많은 고통을 받았다.
아빠 안에는 돈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크게 자리잡혀 있다. 무엇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그것에 다한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아빠는 돈에 대하여 좋지 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불안에 대한 에너지가 있었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 안 좋은 에너지들은 순환하며 나에게 있었고, 성인이 된 후로도 그 에너지가 끝없이 나를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돈을 무서워했다. 불안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안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직시하면서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들은 그 에너지일 뿐이고 실상은 아니라는 것들을 말이다. 이것은 에고가 꾸며내고 만들어낸 허영된 것들, 실제가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즉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결핍과 소멸과 안전의 욕구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면 외부 세계에 대한 갈망과 결핍으로 표출되어 아무 목적 없이 돈을 많이 벌려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 째 빼앗겨 버리거나 혹은 마음의 병에 걸릴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실은 그 순간들은 뼈아프게 고통스러웠지만 그 경험 또한 너무나 축복이고 감사한 것 또한 안다. 이미 겪었기 때문에 나는 상흔이 있고 그 길을 결코 걷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것 또한 안다. 왜냐하면 정말로 슬프게도 누군가를 위하여 사용하는 돈조차 아껴야 할 때는 마음이 좋지 않다. 나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많고 세상에는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게 아직 많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다.
물질 시대에서 돈이라는 가치를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돈은 그저 에너지일 뿐이다. 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돈을 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돈을 찬양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세상 만사 다 변화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장 영원하고 가장 소중한 건 사랑이다. 그 경로를 벗어났을 때,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다 무의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