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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Sep 13. 2023

남성출입금지 펍과 여성들의 혐오발언.

여친이랑 연남동 갔는데 골목길 잘 꾸며진 술집에 굉장히 생소한 문장이 보였다. WOMAN ONLY. 그리고 입구에 보이는 '남성출입금지' 표시.


'개와 고양이 출입 금지' '노키즈존'을 봤을 때 받은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성인이 되고 15년이 지나도록 공공장소에 출입을 금지당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대의 평범하게 생긴 남자 의사를 거부하는 곳이 있나. 거부당할 이유가 없다. 타투도 없고 심지어 에이즈도 없으니깐. 그런 내가 거부당한 느낌은 너무나도 낯설고 생소한 경험이었다.


생소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고개를 조금 더 들어 가게 이름을 봤다. 영어로 된 간판이다. ZZAMZIDAL. 소리내어 읽으면 깜짝 놀라게 되는 이름이다. 자극적인 여성운동 스러운 워딩. 남성혐오로 문제되었던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연상된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넷페미의 상징이다. 인터넷에서 촉발된 메갤(디시 메르스갤러리 - 여기에서 메갈리아가 나옴) 등 넷페미 운동은 남성 이용자 중심의 커뮤니티의 여성배제, 그와 더불어 나오는 여성혐오 분위기에 반발해 그들의 자극적인 용어를 역이용한게 많았다.


여자친구가 가게 이름을 보고 굉장히 당황해했다. 남성출입금지도 그랬다. 남성출입금지는 남성혐오일 수 있지 않나, 가게 이름까지 보면 그런 혐오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느냐면서.


나는,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었다. (페북에 글 써도 되겠다고 싱글벙글했다) 나는 실험적인 행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나 자신도 리스크가 크지 않다면 실험적인 행동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이름부터 도발적인 저 술집에 호감이 갔다. 몇가지 관점에서 남성출입금지 펍을 옹호하고, 이 글에서는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지난 수년간 여성운동 관련 논란에 대해 평하고자 한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도 공감한다. 밀은 말했다. 누군가가 아무리 이상한 얘기를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맞는 말을 못하게 하면 진리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이후에 다른 사람이 뒤늦게 밝히지도 못하고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며 장문을 할애했다)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어야하는 사람이 있었다. 박원순 시장이다. 2004년의 발언이다. 이 말 자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개소리라도 주장 자체를 막으면 안 되지 않나. 문제는 박원순과 그의 친구들이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발의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만세'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광주는 폭동이야'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주가 폭동이라 말했다가 처벌받는게 옳다면 김일성 만세라고 해도 처벌 받는게 맞다. (박원순은 '김일성 만세' 발언에 대해 사과했으나 처벌받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치인이 광주가 폭동이라고 발언한다면 그도 사과하게 될 것이다) '김일성만세'는 괜찮고 '광주는 폭동이야'는 안 된다는 사람은 사실 표현의 자유 때문에 '김일성 만세'를 옹호하는게 아니다.


나는 두 발언이 다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지능이 낮은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두 발언 모두 대한민국 사회에 금기되는 발언임에도 발언 자체를 법으로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의미다.


나보다 더 강한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 페미니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다. 그는 현대 페미니즘 철학의 가장 큰 권위자이고, '젠더 트러블'의 저자로 알려져있다. LGBTQ+에 대한 사상가를 단 한명만 뽑으라면 이 사람이 뽑힌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발언에 대해서는 혐오발언으로 맞대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혐오발언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대'했다. 대신에 맞대응을 주장했다. 미러링, 즉 혐오발언에 대해 혐오발언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 '미러링'을 통해 역지사지시키고 전복하고 해체할 수 있다는게 그의 논리다.


재미있는 것은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너와 나를 격분시키는 말 그리고 수행성의 정치학' 이라는 책은 1997년에 쓰여졌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조명받은 것은 2016년이라는 사실이다.


2016년은 일베의 혐오 방식을 차용하여 이목이 집중받았던 '메갈리아'가 활발히 활동하던 해이다. 2015년에 개설된 메갈리아에 이어 2017년에는 더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워마드'가 개설되기도 했다.


당시 친페미니즘 성향의 제도권 인사들이 주디스 버틀러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의도가 명확하다. '남성혐오' 혐의를 받는 메갈리아 옹호를 위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메갈리아의 남성혐오발언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웹상 다수를 형성하는 남성의 언어를 이용해 그들의 여성혐오를 '전복'시키는 모습이 참신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가 생긴지 얼마 안 되었을때 웹상의 남성이 보이던 '이런 글을 여자가 썼을리가 없다'는 반응은 당시 웹페미들이 성공적으로 상대방을 '전복'시켰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을 보호하려면 일베의 혐오발언도 보호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은 옹호하면서 일베의 그것에는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내 혐오발언은 미러링이라 괜찮지만 네 혐오발언은 안 된다는 식이었다. 진흙탕 싸움을 시작해놓고 내 몸에 진흙 묻히는건 반칙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미러링은 상대방을 깨닿게 하기 위한 것이지 상대방의 발언을 막기위한게 아니다.


이런 제도권 인사들의 웹페미 옹호는 워마드가 일베보다 더한 행동들을 하면서 마무리된듯 하다. 2018년 워마드 운영자에 불법행위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이에 웹페미들이 '편파수사'라며 수차례 시위를 진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경찰청은 '일베는 이용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운영진이 적극적으로 경찰에 협조하지만 워마드는 음란물유포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경찰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운영진이 주도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워마드의 넷페미들이 일베보다 더악질이었던 것이었다.


넷페미들의 남성혐오는 사실 '미러링'을 위한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남성혐오를 하고 싶었던 것이고 미러링은 그들의 왜곡된 행동에 필요한 명분이었을 뿐이다. 미러링이라면 상대방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뒤돌아보게 해야지 그보다 더한 악을 행하면 그 순간부터 남성혐오는 그저 남성혐오일 뿐 미러링이 아니다. 미러링이 뭔지도 모르면서 주워들은 단어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한 것이다.


사실 ZZAMZIDAL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남성접근금지라는 폐쇄성이 주는 웹페미스러운 느낌에서 남성혐오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거 남성혐오 느낌 아니야?' 라는 발언은 내가 아닌 여자친구가 한 말이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상대의 비판을 허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정당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뭐만 하면 혐오딱지 붙여서 발언권을 박탈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에 지쳐가는 와중에 이런 상호명은 반갑기도 하다. (이 펍은 작년에 개업한듯 하다) 얼핏 봤을 때 '미숙해보이는 표현 방식'에 관용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표현이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혐오표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고, 또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혐오표현이 아닌 주장에 대해 혐오표현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혐오 딱지 붙여대며 입을 막아버리는 행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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