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나경원 습격과 스메르자코프
* 커버사진은 1960년 일본에서 벌어진 '도쿄 찌르기' 사건.
일본 사회당 위원장인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살해한 야마구치 오토야는
17세의 나이에 교도소에서 '천황폐하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목 매달아 생을 마친다.
지난 달인 2024년 1월은 유명한 정치인이 두 명이나 물리적인 습격을 받은 달이었다.
목에 칼을 찔린 이재명 당대표와 돌로 머리를 찍힌 나경원 의원을 보면서 우리나라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도 나름대로는 참으로 고달프구나 싶다.
습격범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난무했고, 음모론도 무성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음모를 가졌다다기보다 기본적으로 정신이상자였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백미는 바로 현실성과 상징성 두마리 토끼를 잡은데 있다.
그의 소설은 고도로 상징적인 정치 묘사를 하는데,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그럴것 같은 현실성을 보여준다.
상징성과 현실성 두가지를 동시에 갖춘 소설은 정말 드물다. 정치풍자 소설로 유명한 '동물농장'은 기본적으로 '동물'들을 등장인물로 사용한 우화였으며 '1984'는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SF소설이다. 상징적인 내용을 풀어가려면 현실성은 어느정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주변에 한명쯤 있을것 같은 사람들이 줄거리를 풀어간다.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의 소설이다.
스메르자코프는 표도르의 사생아다. 소설에표도르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표도르가 스메르자코프를 하인 취급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신경써서 챙긴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면 정황상으로는 표도르의 넷째아들로 보는게 맞다.
스메르자코프는 발작으로 인한 의식상실 상태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표도르를 살해했다. 죄는 드미트리가 뒤집어쓰게 만들고 말이다. 이 사실을 이반이 깨닫게되자 스메르자코프는 자살하여 드미트리가 무죄라는 모든 증거를 없애버린다. 이 사건으로 이반은 미쳐버리고 만다.
이반이 미쳐버린 이유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결국은 이반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살해를 저지른 것은 스메르자코프였지만 그에게 살인을 지시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반이었다.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에게 지시를 요구했다.
'멀리 모스크바로 가지 마시고 근처인 체르마시냐에 가서 소식을 기다리십시오'
표도르의 두 아들은 원래부터 표도르를 증오했다. 표도르가 죽기를 바랐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고,
둘째 아들 이반은 표도르가 살해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이반을 존경하는 스메르자코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표도르 살해 전날,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을 떠봤다.
모스크바로 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지만
체르마시냐에 가면 소식을 듣고 금방 돌아올 수 있을테니 체르마시냐에 가서 기다리시라고.
이반은 이게 무슨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엉겁결에 스메르자코프의 요청을 받아들인듯 체르마시냐로 갔고,
평소 이반을 존경하던 스메르자코프는 이를 이반이 살인을 지시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며칠 뒤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의 지시대로' 표도르를 살해한다.
스메르자코프에게 사실상 살해 지시를 내린 것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닳은 이반은 정신적 충격과 죄책감에 미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살인은 이미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 교사범이 되어버렸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한 것은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의 정치테러 풍자였을 것이다.
어디서 튀어나온지도 모르는 이름모를 과격주의자들이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서 지적 우월감과 자기 확신을 가지고 폭력사태를 벌인 것을 스메르자코프를 빌려 풍자한 것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밝혀졌을 뿐 정확한 친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대신 모스크바에 갔다와서 나름대로 도시물을 먹고 어느정도 문명적인 가치관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 없다. 오직 본인의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기심만이 남아있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에서도 그런 묘사를 위한 저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1800년대 러시아에서도 정치테러가 횡행했었나 싶다.
사실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인간의 본성은 똑같으니 그 때도 마찬가지였겠지.
정치에 과몰입한 어떤 이상한 사람의, 지도부의 의도도 반하는 통제되지 않는 정치테러는 그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이들의 모습을 스메르자코프의 부친 살해로 풍자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중에서는 느낌이 덜하지만 여전히 정치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정치적임에도 동시에 큰 깨닳음을 준다.
2024년에 벌어진 정치인 습격을 보고
200년 전에 쓰여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랐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