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용 Jan 25. 2024

6. "아무튼 넌 바보야!"

배은망덕해서 천벌을 받은거야!

그녀는(둘째 부인 소피아) 표도르의 두 아들인 이반과 알렉세이를 낳았다.

(중략)

어머니가 죽은 뒤 두 아들은 이복형인 드미트리가 겪은 것과 같은 운명을 거쳤다. 그들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잊힌 채, 하인 그리고리에 의해 문간방으로 옮겨졌다.


어머니의 은인이며 보호자였던 장군 부인이 이 아이들을 처음 발견한 곳도 이 하인의 집에서였다. 장군 부인은 그때까지도 건강했고, 양녀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8년 동안 잊지 않은 채 소피아(둘째 부인)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듣고 있었다. 소피아가 병에 걸리고 비참하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손님들에게 여러 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년은 혼나야해. 배은망덕해서 천벌을 받은 거야!"


소피아가 죽고 석 달이 지난 뒤 장군 부인이 갑자기 우리 읍내에 나타났다. 그녀는 표도르의 집에 찾아가서 30분 만에 많은 일을 해결했다. 저녁 무렵, 8년 동안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표도르가 술에 취해 부인 앞에 나타났다. 소문에 따르면 부인은 그의 뺨을 두어 번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서너 번 넘어뜨렸다고 한다. 그런 뒤 입을 다물고 두 아이가 있는 하인의 집으로 향했다. 부인은 씻지 않아서 더러운 얼굴에 꾀죄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그리고리(하인)의 뺨을 때린 뒤 두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 아이를 그대로 담요에 말아서 마차에 싣고 데려가버렸다.


그리고리는 충실한 하인답게 그 봉변을 당하고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인을 마차까지 모셔다드리고, 허리 굽혀 인사하며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고아들을 거두셨으니 신의 은총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넌 바보야!"


장군 부인은 마차 안에서 이렇게 외쳤다.




표도르의 둘째 부인이었던 소피아는 입양아였다. 원래는 사제 집안의 딸이었는데, 부모님을 잃고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장군부인(보르호프 부인)에게 입양되었다. 장군 부인이 소피아에겐 은인이고 착한 사람이긴한데 괴팍한 성격도 있어서 10대인 소피아가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소피아는 돈 밖에 모르는 표도르마저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두번째' 도피 결혼을 저지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4. 가상캐스팅https://brunch.co.kr/@qkrjiyong/26에서 소피아의 아들인 이반과 알렉세이를 이병헌과 임시완처럼 묘사했는데, 어머니의 미모를 닮았을 것이기에 잘생긴 외모를 상상하기 충분할 것 같다.


소피아가 표도르와 도피 결혼한 것은 장군 부인에게 명백한 배신이었다. 파렴치한 표도르와의 결혼을 그렇게 반대했는데 거둬주고 키워준 양딸이 자기 말을 안 듣고 최악의 남자와 도피에 결혼까지! 장군부인은 분노해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그녀는 양녀가 사망하고 세달 뒤, 피한방울 안 섞인 양녀의 두 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키운 정은 남아있었나보다 싶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거 아니라는 멘트를 했을거 같은데 .. 러시아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장군부인이 술에 취한 사위(표도르)를 두들겨패고 러시아의 진흙바닥에 두세번이나 넘어뜨렸다고 하니 아주 정정한 기존쎄 러시아 할머니(혹은 노년에 가까운 아주머니)의 모습이 연상되어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상상한 장군 부인(보르호프 부인)의 모습. 저 정도 인상이면 사위 머리 잡고 서너번 넘어뜨리는게 그닥 어렵지 않을듯 하다. Photo © Vostok | Getty Image




이번 편에서 주목할만한 포인트는 여러가지다.


먼저 이반과 알렉세이가 어머니의 성향을 얼마나 닮았을지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글의 앞 부분에서 소피아는 부모님처럼 굉장히 종교적인 성향의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종교의 길을 걷는 알료샤와, 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어 오히려 무신론의 길을 더 적극적으로 걷는 이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두번째는 하인 그리고리다. 그리고리는 이 장면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오는데, 농노제 폐지 후에도 파렴치한 주인인 표도르를 떠나지 않고 그를 계속해서 섬기고 있다. 그 와중에 표도르 챙기면서 표도르에게 화내고 훈계하는 모습은 계급주의 사회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어떻게 그들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주장한 프랑스 혁명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그리고리의 책임감 있는 성격은, 자신을 폭행하기까지 한 장군 부인을 축복까지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하인 그리고리는 작품 최후반부까지 제법 비중있게 나온다. 그리고리는 이반과 알렉세이 뿐만 아니라 첫째인 드미트리도 직접 키웠었는데, 나중에 다 커서 28살 먹은 드미트리가 술먹고 자신을 두들겨패는 바람에 배신감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내가 키운 드미트리 도련님이 ..'라며 울먹이는 그리고리의 모습을 보면 연민의 감정이 샘솟는다.

러시아 농노가 살던 집. 그리고리는 이런 곳에서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다 키웠다.


참고로 나중에 그리고리 팬 다음 날 술 깨서 죄책감 느끼는 드미트리의 모습도 나오는데, 자기 키워준 하인을 두들겨패놓고 무슨 죄책감인가 싶어 한심하면서 그 와중에 짠하기도 하고 .. 여튼 심정이 복잡해진다.




별도로 한번 생각해 볼만한게 있는것 같다. 장군 부인 입장에서다.


양녀의 두 아들을 데려가는(사실상 구출이라 보는게 맞을듯) 본인에게 '신의 은총이 있을것'이라며 축복하는 하인 그리고리에게 독설 대신 할 수 있는 대답이 또 뭐가 있을까?


이미 때려버린 뺨인데 갑자기 표정 바꿔서 미안하단 말을 하기는 힘들거 같고. 기존쎄인 장군 부인은 '아무튼 넌 바보야'라고 소리도 질렀는데 이거 말고 대신할만한 대답이 있을까?


사실 나였어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거 같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손자 둘이 농노 집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살고 있으니) 대한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행동으로 이어졌을테니 말이다. 분노의 감정 외에는 표현할 감정이 없었을 것 같다. 뺨 맞고 욕도 먹은 그리고리도 그리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말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추진력이랄까. 합리주의적인 행동 대신 감정이 앞서 발생한 충동적인 행동이 보여줄 수 있는 순기능을 잘 보여준 장면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5. "이제야 해방이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