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의 뉴진스 하니, 한강 작가 논란을 보면서
Cult-like Reverence.
신격화는 단순히 신으로 떠받들어 추앙하는 것 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는 이들을 종교의 적으로 몰아붙여 때려잡는 교조주의적 태도를 포함한 의미다.
신격화를 직역하면 deification이 되지만, 신격화가 한국 사회에서 가진 의미를 가지면, Cult-like Reverence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얼마전 SNL에서 뉴진스 하니와 한강 작가를 패러디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하니 패러디에 대해서는 어눌한 발음을 따라해 인종차별로,
한강 작가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가늘게 떠서 외모비하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었다.
'혐오표현'은 애매모호한 단어다.
세계적으로 혐오표현의 정확한 정의가 나라마다 제각각이며,
혐오표현을 다루는 기관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구분이 다르다.
다만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혐오 표현의 판단 기준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대항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비주류에 속하는 개인 또는 집단은 주류의 위협 속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되고 주류를 형성하는 혐오 표현의 지지자들은 집단적으로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결집하며, 결과적으로 혐오 표현은 사회 내 차별의 정당화, 조장, 강화로 귀결된다. ”
이런 관점에서 볼때 뉴진스 하니를 패러디한 SNL의 연출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뉴진스 하니가 외국인으로서 말투가 어눌한 부분에 대해서 차별이나 배제나 고정관념을 부여한 부분이 있었나? 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우리나라 정치권력의 정점에 달한 국회의원들이 그녀의 팬으로서 경박한 행동 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이 장면에서 외국인에게 강요되는 이미지가 있었나? 없었다.
한강 작가의 경우 눈을 가늘게 떠서 외모비하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연출 과정에서 눈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외모 비하 의도가 관찰되지 않는다.
단순히 한강 작가의 외모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패러디로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작은 눈 같은 경우, 외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눈을 가늘게 떠서 인종차별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어 다소 민감할 수는 있겠으나 ..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눈을 가늘게 뜨는건 인종차별이라 보기 어렵다. 애초에 미국에서도 흑인 백인 아시아인들이 본인이 속한 인종을 비꼬는 농담도 널리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이 논란은 나처럼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거 같다.
논란이 커지지 않아 굳이 글 쓰지 말까 싶었는데 굳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신격화, Cult-like Reverence 를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일부에서 노벨문학상을 정치적인 상이라며 폄하하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직접 읽어봐도 예술적인 부분이나 '채식주의자'에서 에코페미니즘으로서 현대 사상을 다루는 내용이 탁월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한강 작가를 신격화하려 하고, 그녀의 이전 정치 발언에 대한 지적도 원천 차단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2017년에 한강 작가의 문제 발언 때문에 강경화 전장관이 비판하기도 했는데, 만약 그 사건이 2024년 올해 벌어졌으면 비판이 불가능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2017, 2018년에 벌어졌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이 아니면, 여성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발언도 용납되지 않는
페미니즘에 대한 신격화, Cult-like Reverence for Feminism 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비판과 다른 의견을 차단하는 태도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바로 2대남이었고,
그렇기에 최근 대선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친 것도 2대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요 몇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신격화는 보기 어렵지만,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신격화는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보기 힘든 동아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