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 종교를 믿는 의사의 장점

환자는 고민하는 의사를 원하지 않는다

by 박지용

무엇이 그들에게 장로를 그토록 사랑하게 하는지, 도대체 그 무엇이 그들에게 장로를 보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 엎드리게 만드는지 알료샤는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 그는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노고와 슬픔, 변함없는 부정, 자신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끝없는 죄과에 고통받는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성인이나 성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보다 더 큰 희망과 위안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설령 우리가 죄악과 거짓과 유혹에 괴로워할지라도 어디엔가 우리 곁에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분이 계신다. 바로 그분에게는 진리가 있고, 그분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는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에게로 찾아와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온 땅에 퍼지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알료샤는 민중이 이렇게 느끼고 믿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조시마 장로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 성인이며, 하느님의 진리의 수호자라고 굳게 믿었다.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농부들이나 자식을 장로 앞으로 내미는 병든 여인들의 믿음과 같은 신앙이었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느낀 것은 하나다.

환자는 의사가 고민하는 모습, 고뇌하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답을 알고 있어야하며 주저함이 없어야한다.

환자들은 어쩌면 의사가 아닌 하나님을 원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최근 다른 SNS에 철학과 관련된 글을 올렸다.

그리고 논쟁적인 글을 올리자, 폭발하는 조회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악플이 달렸다.

철학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고, 의심과 해체가 필요한 주제다.

반면 종교에는 정답이 있고, 의심이 금기시된다.


환자들은 자신의 주치의가 단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을 말해주길 바란다.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나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반면 철학적인 주제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습은 신뢰를 잃게 한다는 느낌이 든다.

의심과 논쟁을 부르는 의사를 자신의 주치의로서 반기는 환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질병과 그로인한 통증, 괴로움에 지쳐있는 환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환자에게는 고민하고 의심하며 진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는 의사보다는 종교적인 믿음으로 단호한 결론을 내려주는 의사들이 더욱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줄 것이다.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의대생때 배운다.

죽음과 가까운 중증 질환일 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수직적(paternal)이며

죽음과 거리가 먼 경증 질환일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뇌질환을 보면서 죽음의 코앞에서 수술 여부를 결정해주는 의사였을 때 나를 보던 환자의 보호자들은 30분 가까이 설명해주던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증인 디스크, 협착 질환에 대해서 각 치료의 장단점에 대해 30분을 설명듣는 환자들은 눈빛이 흐려지며 왜 이 의사는 결론을 복잡하게 얘기하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New Project (22)(223).jpg




그런 부분에 있어서 회의하지 않는 스타일,

종교적인 신념으로 복잡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종교인이

의사로서는 오히려 좋은 성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랑 토론하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어쩌면 정신과의사라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지만 ..

수술하는 의사에게 적절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 정치인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