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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선 Mar 15. 2024

28살 백수 나를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아니 취직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에는 또다시 피하고만 싶었던 취업 준비에 뛰어들게 되었다.

한 것도 많은 거 같고 열심히 산거 같은데 면접 같은 데 탈락되면 내 인생이 부정당할까 무서웠다

아니라는 걸 머릿속에서는 알아도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머리로 안다고 바로 받아들여지냐고!! (고라니쓰)


24살부터 졸업 전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똥을 싸고 용을 쓰고 하는데 1년째 발전이 없었다.

이걸 뭐 어디서부터 내 인생을 정리해서 뭘 보여줘야 하지 막막하고 또 남들에 비해 별것 없는 거 같고

참 뭐 내가 대단한 거장의 글을 쓰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거 하나 못 만드는 게 못나보였다.

대학생이 뭐.. 실무 경험 있을 리 만무하고 인턴이나 알바라도 하고 싶은데 그마저도 뚫기가 쉽지 않았다.

실무경험을 쌓으려면 또 다른 유사실무 경험이 있거나 무한 고리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서 숨 쉬면서, 밥 안 먹고 똥 안 싸면서 나무처럼 살아갈 수도 없고

그냥 존재하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포폴 준비하고 있어 이력서 넣는데 잘 안되네.. 쩝 요즘 신입을 잘 안 뽑아 취업시장이 얼었잖아 “ 같은 말만 반복하며

내심 안쓰러워하는 엄마에게 또 나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었다.


걱정하는 이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할거 같은데 부담되고

그래서 그때는 밤마다 엄마가 집에 오면 밤늦게 산책을 나갔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맘이 심란하고 압박돼서 걷기라도 해야 되겠다 싶더라.

지쳐서 들어와서 자고 또 일어나서 밥 먹고 컴퓨터만 봤다.


25살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멋모르고 취업이 무섭다고 덜컥 창업을 했다.

일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고 좋아하는 일이었고,

또 무엇보다 설사 망하더라도 우울한 이 느낌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다들 용감하다고 했지만 난 그때는 그게 왜 용감한지 몰랐다. 취준 하는 게 더 대단해 보이는데..?


2년간 사업을 열심히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접었다.

28살 엄마와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월세를 내기 시작하니 고민이고 나발이고 솔직히 돈 때문에 초조했다.

이제부터 유료숨쉬기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 사지 멀쩡한데 뭐라도 하자.

면접을 거의 하루에 2~3개씩 보면서 2~3주는 면접만 봤다.


육아휴직 대체자로 합격을 해서 1년짜리 파견직을 다니는 데 일을 할수록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회사라는 곳에서 일하는 게 신기하고 긴장되고 사람들도 잘해주고

월급이라는 게 나와서 너무 신났다. 주변사람한테 선물도 하고. 거기까지만 좋더라.


원래 생각했던 직무가 아니기도 하고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요는 생각도 들었다.

일과하고 싶은 일을 분리해서 돈만 벌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관뒀다. 어휴 또 백수다.


이제 진짜 또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2년 전 3년 전과 또 똑같은 도돌이표를 마주한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 포폴 만드는 게 힘든 거니까 지금 있는 거라도 잘 정리하자 뭐라도 지원이라도 해야지


생각하던 직무의 신입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

서류를 정리해서 몇 군데를 지원해 봤다.

1군데 면접을 본 것 말고는 회신조차 없었다.

면접 본 곳에서는 내심 채용하고 싶어 하셨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고사했다.


또 포트폴리오가 문제구나 싶었다. 뭘 했는지를 보여줘야 취직을 하지..

아님 내가 눈이 너무 높았나? 그런 거 같지도 않은데

높은 실행력과 쫄보심리와 완벽주의의 환장의 콜라보로 인해 나는 또 패닉에 왔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로 쫌쫌따리 잘하는 나를 하나로만 설명하려니 기준과 컨셉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웠고

직무에 근접하지 않은 경험들을 소거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럼 내가 해왔던 경험이 ‘여기에 필요 없으니’ 열심히 살지 않은 건가 시무룩했다.

일하는 나와 인간적인 나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지지해 줄 무언가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해온 것들 모두 나라고 유의미하다고.


그래서 내 안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표현해 줄 방법을 찾다가

나를 주제로 매거진을 발행해 보면 어떨까 싶더라.

포트폴리오 속 나와 / 인간적인 나를 분리하고

혹여 취업 전선 속에서 탈락되어도 인간인 나는 탈락되는 것이 아님을 다독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야 좌절 속에 갇히지 않고 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또 완벽주의의 늪에 빠져서 시도도 못해보고 좋은 기획이 빛을 발하지 못할까 봐

느려도 좋으니 내가 나를 잘 몰고 갈 수 있도록  

잘 쓰지 않아도 되는 이런 일기 같은 글도 편하게 써볼까 한다.

나에게 작은 당근을 주기 위해서.

어려움을 겪는 나 조차도 하나의 기록과 위로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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