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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Mar 20. 2022

저는 MZ세대 프로 퇴사러입니다.

나의 퇴사 이야기 (1)

작년 초 견디기 힘든 직장생활로 인해 얻은 병을 계기로, 주기적으로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 주로, 간단한 상담과 약을 받아오는 일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신경정신과의 문턱을 밟았다. 첫 방문에서는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 두통과 수면장애 그리고 가슴통증 따위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상담 뒤에 내려진 처방전과 함께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정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었다. 어차피 여기 아닌 어딜 가도 똑같을 거라는 자기 위안을 삼아 결론을 매듭지어버렸다. 딱딱하고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조직 문화는 겪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한 곳이니까. 누구나 겪는 그런 일이니까. 약을 받아온 그날은 평소보단 그나마 일찍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일을 하던 중 불현듯 심장이 요동을 쳤다. 손에 땀이 차고, 숨을 쉬기 벅찼다. 터질듯한 불안감을 버티지 못하고 일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급한 대로 비어있는 회의실에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다. 익숙한 목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진정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발작적인 순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지만, 이후로도 빈번하게 발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반복되는 일상마저 힘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딴생각에 잠기거나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관계 속에서 뭔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들을 마주칠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로 인해 벌어진 모든 오해와 갈등을 마주하는조차 버거웠다.


"키키씨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다정다감한 투로 건네는 선배의 말에 뜨끔했다. 걱정된다며 달달한 간식을 챙겨주는 선배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 표정이 혹시 안 좋은 게 티가 났던 걸까. 혹은,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내 눈치를 살피게 만들었나.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회사를 다녔던 걸까. 그런 생각들이 스치자 불쑥 내가 속한 이 조직에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필사적으로 '회사'라는 장소를 견뎌냈다. 진단 후 8개월을 어떤 정신으로 버텨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스트레스가 지나칠 땐 수면 두통과 입면 환청을 들으며 잠자리를 설쳤다. 퇴근을 하며 안도인지 불안감인지 원인 모를 눈물도 쏟았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끼리 하루 일과를 털어내며 웃다가도 모두가 잠들면 새벽까지 울다 지친 모습으로 아침을 맞았다. 아침이 되면 심장이 쿵 떨어졌다. 분명히 몸 아래 바닥이 존재하는데 바닥이 아래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이 참담했다.


그날의 아침은 유독 그랬다. 출근을 위해 탄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할 때 즈음되자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처럼 같은 정거장에서 내렸다. 회사 입구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 곳의 문턱이 이렇게 높았던가. 내 자리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장애물이 많았던가. 출근 후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초조한 심정으로 나는 상사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곤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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