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 이야기(2)
"저, 도무지 내일부터 못 나오겠어요.
저는 지금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거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회사를 다니기 전과 후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중 가장 현실적인 심각한 문제는 바로, 씀씀이가 헤퍼진 것이다.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그리고 30초라는 시간. 이 세 가지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나는 쇼핑이라는 행위로 찰나의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방금까지 듣고 있던 모든 폭언을 잠시나마 망각하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이 방법을 자주 이용했다.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도, 퇴근할 때도 틈틈이 쇼핑 사이트에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샀다. 월 30~50만 원가량의 카드빛이 순식간에 200~3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나의 월급은 내 또래 나이의 표준 월급 200만 원에 불과했다. 내 또래 친구들이 주식투자에 몰두할 때 나는 미친 듯이 물건을 샀다. 나의 소비에는 철저하게 나의 '욕구'만이 반영이 되어있었다. 택배가 오면 풀어보지도 않았다. 상자들은 삽시간에 내 방을 점령했다. 풀지 않고 산처럼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며 나는 이유모를 안도감을 느꼈었다. 나는 이 또한 취미라고 정의를 내렸다.
매달 월급은 말 그대로 통장을 스쳤다. 나는 모르는 척했다. 여행을 가고, PT 하는 사람들처럼 나의 소비도 그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야 그 상자들을 풀어헤쳤다. 그곳에는 물건이 아니라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자 꾸러미를 풀면 풀수록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산 것들 중에 나를 위해 산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단 한 가지도.
여전히 카드빛은 남아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를 줄이고 줄여서 딱 1개만 남겨두었다. 내가 퇴사 후에 얻은 건 경험, 커리어, 우울증과 수면장애 그리고 백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카드 빛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