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랑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나의 퇴사 이야기(4)
나에게 있어서 신용카드란 친구이자 애인이었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무슨, 이런 끔찍한 소릴 다 하나 싶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여긴다. 회사 다니면서 인격체를 가진 모든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저마다 잘못한 것은 없는데 상처뿐인 사람들만 넘쳐났으니까. 그래, 이 사람들이 무슨 죄겠는가. 다 밥 벌어먹으려고 이 짓을 하는 게 아니겠느냐 말인가. 회사가 사람을 그렇게 가르친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달래다가도 가끔 입으로도 똥을 싸는 진귀한 광경을 보면 대략 정신이 혼미해진다.
탁한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거겠지. 취미라도 생기거나 사랑하는 애인을 떠올리면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문득 내게 그런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고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그리운 존재. '신용 카드'였다. 내 주머니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휴대폰 속 삼성 페이를 떠올렸다. 애틋해진다. 그래, 사랑이었다.
백가지의 취미보다 한 가지의 확실하고 뚜렷한 보상이 있다면, 무가치한 것들에 집착하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신용 카드는 확실했다. 간편하고 확실했으며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존재였다...
이렇게 나와 신용 카드는 만나서 사랑을 했다. 가끔은 대화도 나눴다. "나 이게 너무 갖고 싶은데..." 하면, 30초 지나지 않아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신용 카드는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까다로운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비해 이리 손쉬운 존재가 있을까. 그래, 이렇게 세상에 손쉬운 게 있다는 걸 의심해야 했다.
카드 청구서와의 아찔한 대면식이 떠오른다. 생각지도 못한 내 연인의 실체를 마주한 거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위풍당당한 실연이었다. 대차게 차이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신용 카드는 벗겨놓고 보니 연인이 아니라 빚쟁이인 셈이었다. 내가 신용 카드를 통해 받은 위로와 별개로, 빚쟁이와 사랑을 나눌 순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실체를 마주한 뒤엔 눈물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으니 신용 카드와 나 사이에 있던 것 사랑도 뭣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