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어른들의 세계
회사를 관둔 뒤에도 나는 그들에게 가장 큰 이슈였고,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서 나는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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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둔 지 꽤 지난 어느 날, 친한 동료 중 A가 아침부터 나에게 oo님 아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누군지 모른다고 답했다.
어디서 만난 적이 있거나 같이 일한 적이 있는지 또다시 확인한 A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알겠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일하느냐 바빠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퇴근쯤에 A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oo에게 확인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oo은 A에게 혹시 한팀장을 아냐고 물었다고 했다.
A가 안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고, 내 팀원이었던 A는 팀장님이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후 A는 나에게 oo이 누군지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하고 우리의 대화를 끝났다. 하지만 A의 궁금증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A는 oo에게 나를 어떻게 아는지 물었다. 같이 일한 적이 없고 일면식도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oo은 전날 몇 명의 사람들과 모여 조촐하게 회식을 했다고 한다. 회식 자리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왔고, 여러 사람들의 대화 속에 한팀장이 계속 언급되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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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리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피로감이 몰려왔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표뿐만 아니라 그녀와 다른 직원들까지 전부 나를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욕하고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절머리가 났다. 소름 끼칠 정도로 싫었다.
회사를 떠난 지 한두 달 사이라면,
아직도 기억해 줘서 고맙네.
그래 아직 나를 잊지 않았어!!!
라고 해야 할 것도 같았지만 이미 회사를 관둔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관둔 직원을 한두 달 이상 기억하는 것도 힘든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나는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 모르는 사람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와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그곳에서 역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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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두면 잊히기 마련인데, 내 이야기는 늘 새롭게 생성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회사에 남은 동료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말이 가득하면 상관없지만, 늘 나쁜 이야기가 전해졌고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넘쳐날 때마다 짜증 났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옮길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심신이 피곤했다.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지 답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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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둔 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참고 참았던 내 이야기가 동료들의 입을 통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뒤 매일 같이 듣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어느새 평온함으로 바뀌었다.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식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그 회사에서 아까운 인물이었구나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더니 더는 나쁘지 않았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그것도 다 애정이고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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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두면 끝날 줄 알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끝나도 끝나지 않은 열린 결말 속 영화처럼 내내 찝찝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언제까지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야 하는 건지.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냥 그려려니 했다.
오죽하면 관두고 몇 개월도 아닌, 몇 년이 지난 사람을 욕하고 원망하고 미워할까. 싶은 생각을 했을 때 오히려 그들이 전부 유치하고 미성숙한 어른으로 보였다.
관두면 대부분 잊히기 마련인데,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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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뒷담화는 참을 수 없어
남의 말을 옮기는 것만큼 쉽고 재미난 일도 없다. 뒷담화는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정말 너무 즐겁다. 업무로 지친 삶에 누군가를 씹고, 물어뜯는 것만큼 신나고 짜릿한 일도 없고, 함께 욕하면서 쌓이는 유대감은 친목에도 좋다. 전우애가 쌓이기도 한다.
뒷담화를 과연 그들끼리만 할까?
당사자가 없으면 똑같이 욕하고, 비난한다. 남의 말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함께 욕하던 상대가 사라지면 그 사람을 욕한다.
우리는 전우애로 똘똘 뭉쳐서 아니라고 외면해도 현실은 아니다.
뒷담화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다들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서 타인을 험담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찌질하게 욕하고 비난할 시간에 일에 대한 업무 스킬이나 갖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