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었을까. 미워하는 마음이었을까.
회사를 관둔 뒤에도 나는 여전히 동료들과 연락하면서 지냈다. 경쟁업체로 이직했지만, 업무가 겹쳐서 이런저런 이슈가 있을 때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다니고 있는 회사뿐만 아니라 이전 직장의 동료와 함께 성장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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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일적인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나중에는 다른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나눴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아지면서 이제 나는 잊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관둔 지 2년쯤 지났으면 잊혔어야 했던 내 이름은 무심코 한 번씩 누군가를 통해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나는 여전히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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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닐 때 종종 대표와 밥을 먹기도 하고, 가끔 둘이 회의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대표는 나에게 물었다.
한팀장은 누구 직원이에요?
한팀장은 내게 충성하고 있어요?
일하러 온 회사에서 충성을 요구하는 대표가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의 직원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20대였던 나는 그 질문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일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대표는 말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를 몰랐던 나는 그때마다 웃거나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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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었던 나의 상급자를 택한 것도 충성심 때문이었다. 일하는 동안 나는 대표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본인이 다루기 힘들다는 생각에 상급자를 택했다.
관두는 과정은 피곤했지만, 관두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좁다. 경쟁업체로 이직하면서 내 소식은 매우 빠르게 전해졌다.
대표는 내가 경쟁업체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자신과 적이 되지 않도록 경쟁업체보다는 다른 쪽으로 이직하라고 권유했다. 사직서를 작성할 때 3년 동안 동종업계를 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같이 넣어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면접 보러 가기 귀찮았던 나는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던 회사로 이직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대표는 내가 이직한 회사 대표를 만나 내 이야기를 했다. 나 대신 상급자를 선택한 이유와 함께.
한팀장 힘들지 않아요?
일은 월등하게 잘하지만, 성격이 힘들 텐데.
대표를 어려워하지도 않고 부러지지 않아서
아쉽지만, 한팀장 대신 무릎 꿇는 직원을 택했어요.
관두고 난 뒤에도 계속 나를 언급하고, 말하는 대표를 보면서 애증인가 싶었다. 그나마 일은 월등하게 잘한다고 칭찬해 줘서 못한다고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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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를 관둔 지 2년쯤 지났을 때 나와 가장 친한 동료 C가 대표와 둘이 밥을 먹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나와 C가 연락하는 걸 아는 대표가 C에게 물었다.
한팀장이 나 많이 원망하죠?
저 아직도 많이 미워하나요?
애초에 C와 대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기 때문에 C는 아닐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한팀장이 나 많이 원망할 텐데,
한팀장이 나 많이 미워할 텐데,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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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관둔 뒤 끝이었다.
나와 나의 상급자를 저울질하면서 고민하고, 내가 이직한 회사 대표와 만나 내 이야기를 나눌 때 조금은 짜증 났지만, 대표가 나를 많이 좋아했나.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는다고?
아직도 나를 기억한다고?
이렇게 나를 격하게 아끼는 사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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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내가 기분 나쁠까 봐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관둔 뒤에도 회의할 때 종종 대표와 직원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었고, 그때마다 주인공이었다고 …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나쁘지도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
대표는 내가 자신을 원망한다고 생각했지만, 반대였던 거 같다.
대표가 나를 원망하는구나.
대표가 나를 많이 미워하는구나.
나에게 누구의 직원이냐고 물을 때,
자신에게 충성하냐고 할 때,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한 번쯤 했어야 했지만, 나는 원하는 답을 끝까지 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2년 넘도록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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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망하기 전까지 나는 여전히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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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충성한다고?
회사에 충성한다고 하는 이가 가끔 있다. 진짜로 충성하고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봤던 사람 중 꽤 많은 사람들은 말뿐인 충성이었다.
말로만 충성했고 일은 늘 뒷전이었다.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겠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은 누구보다 재빠르게 관뒀다.
과연 진심이 아닌 말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일 하려고 출근한 회사에서는 제발 일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