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벌어진 일
나는 둥글지 못한 성격이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할 만큼 악한 사람은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상대하지 않을 뿐, 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옮기지 않는다.
애초에 친하지 않은 사람과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편이라 관심 없는 사람 이야기를 여기저기 쏟아내면서 시간을 할애하는 건 나에게 그저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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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업무를 하다가 관둔 뒤 B 업무를 맡아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녀는 나보다 2살 많았다. A 업무를 할 때 종종 나와 부딪힌 적이 있었던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고 할 때 어느 정도 불편함을 예상했다.
그녀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웃음도 많았고, 본인 사생활을 자주 이야기했다. 궁금하지 않았고, 점심시간만큼은 평온하게 지내고 싶은 나에게 그녀는 너무 버거운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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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들갑 떨고 유난스러운 그녀가 불편했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업무가 달라서 부딪치는 일이 적었고, 관심 주제도 달랐기 때문에 인사 외에는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가끔 그녀가 나에게 술이나 커피를 마시자고 말한 적이 있지만,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몇 번 거절했고, 그녀는 더 이상 나에게 커피나 술을 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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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관둔 뒤에도 동료들과 종종 만났다. 관둔 뒤에도 나를 팀장이라고 생각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는 동료들의 하소연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중 한 명과 밥을 먹은 날이다. 밥 먹고, 카페에 가는 길에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못 본 척했고, 나도 그녀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라 모른 척 지나갔다.
카페에 들어갔을 때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못마땅한 게 있던 건지 아니면 그동안 못한 말을 쏟아붓고 싶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통화하고 싶지 않았고 이미 그녀는 술도 꽤 마신 거 같아서 같이 마실 생각 없으니 전화를 끊자고 한 게 전부였다.
술에 취한 그녀는 내가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폭풍 문자를 보냈다.
너는 원래 이렇게 모든 게 삐딱하지?
네가 그렇게 잘났어?
반가워서 한잔하자는 게 어려워?
그렇게 삐딱해서 세상을 어떻게 사냐.
처음부터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고, 커피 한잔하고 집에 들어갈 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내가 거절하고 전화를 끊은 것부터 화가 났던 거 같다.
한참 동안 문자를 보낸 그녀는 내가 대꾸하지 않자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같이 있던 동료에게도 내일 모른 척하라고 일러두었다.
관둔 지 몇 개월이 지난 회사에서 내 이름이 더 이상 언급되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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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와 짝짜꿍이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회사를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회사를 관둔 후 나와 가장 친한 동료 C를 만나 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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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그녀와 대화 중에 내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C가 먼저 그녀에게 물었다고 했다.
한 번도 한팀장은 oo님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없는데?
왜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세요?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C에게 고백했다고 했다.
그동안 한팀장을 오해한 거 같아요.
대표가 한팀장이 저 싫어한다고 해서 저도 싫어했어요.
한팀장 관둔 뒤에도 자꾸 일할 때 비교하는 것도 싫고..
한팀장 관두지 않게 내 사람으로 만들라고 했는데..
곁을 주지 않아서 너무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표의 이간질에 제가 놀아난 거 같아요.
만날 일이 없을 거 같은데 대신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C가 그 말을 전하면서 괜찮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관둔 뒤에도 대표가 나와 그녀를 비교했다는 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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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답지 못한 사람 때문에 그녀도 결국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을 때 내가 거절하지 않고 한 번쯤 대화를 나눴다면 서로 오해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불편해서 피했고, 그녀는 내가 거절한 후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가 내 말 맞지? 걔가 너 싫어하지? 이러면서 중간에서 이간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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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와 한 번도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없다. 아니 다른 직원의 이야기도 나눈 적이 없었다. 칭찬할 이야기는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인사고과의 문제가 생길까 봐 함구했다.
그래서였을까. 말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오히려 나에게 화가 되어 돌아왔다. 모두가 한 마디씩 하지만, 나만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걔가 너 싫어한대.
걔가 너 싫대.
걔가 너 일 못한대.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했다는 것처럼 다른 직원들에게 전했다.
내가 관두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생성되었던 나의 이야기는 나를 꽤 오래 지켜본 C가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나에게 해줬을 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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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자꾸만 이 사람, 저 사람 입으로 퍼진다는 것과 관둔 지 한참 지났는데도 계속 언급되는 게 싫었다.
근데 잠시 뿐이었다.
대표가 나를 좋아했나?
대표는 내가 관둔 게 많이 아쉬웠나 봐.
긍정적으로 생각했더니 나름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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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구설수에 오르면서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다.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저렇게 살지 않아야지.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는 내 갈길을 가야지.
좋은 사람들 중에 더 좋은 사람이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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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어른다웠으면 좋겠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만난다. 좋은 사람과 더 좋은 사람이 넘쳐나면 좋을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 중에 누가 나은지 구분해야 한다.
그만큼 회사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신을 어필해야 하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깎아내고 험담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돈 벌려고 온 회사에서 일만 하기도 바쁜데 사람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사내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를 관두면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겪는 이유일 것이다.
이게 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다.